로고테라피로 유명한 빅토르 프랑클이 아직 강제 수용소에 있을 때, 그들이 곧 석방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인데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이가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쁜지를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프랑클은 깨달았습니다. 수용소에서 생존하는 데 집중하느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기쁨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감정을 억제한 채 살아온 탓에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퇴화했던 것입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이 삶에서 의미를 찾을 때 가장 강한 내적 힘을 발휘한다고 봅니다. 프랑클의 이 경험은, 감정을 억누르고 의미를 상실한 삶이 어떻게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감정적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제게도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는 때, 혹은 느끼고 있는지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감정이 뒤늦게 찾아오거나 아니면 그대로 사라지는 때가 있지요. 평상시 억누른 나머지 나의 감정은 퇴화한 것이 아닌가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사회가 감정을 억누르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지요. 한국 사회는 절제된 감정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 유교문화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 나라뿐 아닙니다. 미국과 같은 서양에서도 감정 표현은 약점으로 여겨집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감추기를 권장합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문학 특히 시는 감상하는 것보다 비평하는 것이라는 교육 방침이 이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지요. 웰튼 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존 키팅 선생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를 가르칩니다. 감명받은 학생들은 시 읽기 클럽을 만들어 시를 감상합니다. 비평은 이지적입니다, 반면 감상은 감정적으로 여겨집니다. 학교의 방침은 비평이지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키팅 선생님은 쫓겨납니다. 이러한 일은 한국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 교육도 비평을 위주로 하고 있지요.
사회는 감정 표현을 개인의 약점 혹은 무례함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는 개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하는 감정 규칙을 형성합니다. 사회구성원은 그 사회의 감정 규칙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라난 개인들이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거나 혹은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를 많이 알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수업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문화마다 감정 표현이 다르기에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번역 용어로 한다면 어휘 집합 중의 하나였습니다. 문득 시계를 보았더니, 중요한 대목이 남아 있었지만 끝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쉬운 표정이었던 지라 각자에게 아쉬움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혹은 다른 표현도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명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두 명은 안타깝다거나 서운하다거나 등으로 약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표현을 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표현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중 한 명은 끝내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아쉽다는 느낌은 무언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운하거나 안타깝거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거나 모두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휘들을 단숨에 떠올리지 못한 것은 평상시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지닌 감정어휘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다시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달리 말해 우리 사회는 감정 표현을 반기지 않는다는 우리 사회의 감정 규칙을 다시 깨달았던 것입니다. 감정 어휘를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감정 어휘가 늘어나면 감정을 더 정교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단순히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초조하다, 기대된다, 서글프다, 애틋하다"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가장 좋은 일을 떠올려보겠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몇 달간 기다렸다고 해봅시다. 애타게 기다렸거나 초조하게 기다렸거나 불안해 하면서 기다렸거나 했을 겁니다. 혹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을 겁니다. 각 표현은 다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애탄다는 것은 걱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초조하다는 것은 조마조마 했다는 의미입니다. 불안하다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기다림 뒤 기다렸던 일이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면 기쁨이 배가 되었을 겁니다.
감정 어휘가 늘어나면 날수록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아쉬움이나 기쁨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다양한 결을 지닌 복합적인 감정이라는 점을 여러가지 표현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감정이 그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양한 맥락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감정을 구별하는 능력이 높아지고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면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