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영 Nov 04. 2018

진작(眞作) 확신하는 이우환, 단색화는 확신할 수 있나

<2016년 7월 8일, 예술 잡지 디아티스트매거에 출고된 기고문입니다>

     '선으로부터' 1976  ©이우환                        

다소 한풀 꺾인 듯한 분위기다. 사건이 보도될 당시에 비하면 분명 그렇다. 그래서 지금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너무 열을 올릴 때는 보이던 것도 잘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다소 소강상태일 때 비로소 필자도 대중도 조금 더 사물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쓰는 이 칼럼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색화의 열풍을 소개한지 정확히 1년 만에 이러한 글을 쓰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천경자 화백의 논란과 더불어 모처럼 미술계가 대중들에 둘러싸여 집중 관심을 받았다. 물론 안타까운 화제로 집중시킨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대중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가십거리마냥 즐겼고 그래서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식의 물음표를 던져대기 바빠 보였다. 쉽게 말해 전문 감정단과 작가 본인 간의 진위 다툼이 주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아쉬웠다. 물론 결과가 매우 중요한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빼놓고 지나가서는 안 될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우환 화백 건에서 말이다.


이우환 화백은 사건 당시 분명 본인 것이 맞다며 확신하고 현장에 나섰지만 감정을 마치고서는 다소 그 확신에 무게감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본인 것임을 인정 또는 인증했다. 여기서 문제가 될 만한 그의 코멘트가 있었다. 당시에는 1년에 300점 이상 만들었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300점이 넘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논리적이다. 하지만 300점을 그렸다는 부분에서 필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단색화를 말이다.


일전에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세계적인 관심을 얻으며 몸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장르에 대한 이론적 명제 확립의 필요성을 제시했던 내용이었다. 당시에 한국의 단색화와 서양의 모노크롬에 대해 비교정의를 한 바 있다. 두 장르 모두 일반인이 보기에는 크게 차이점이 없다. 우선은 작품 자체가 매우 단순해 보이고 근원적인 물음에 접근하려 하며, 사용된 도구나 색감도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단색화의 독립성을 증명할만한 큰 차이점이 있었다. 물질적 제약을 넘어 극단적인 제작방식을 통해 작품의 형체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노크롬과 달리 단색화는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 속에 스며든 정신을 더 우선시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두 장르 모두 작가의 노력이 깃들여져야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색화는 작품 속 과정과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1년에 300점 이상을 그려낸 당시의 이우환 화백의 경우, 그 스스로는 본인이 그린 작품을 단색화라 확신할 수 있을까. 위작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전에, 단색화라고 확신할 수는 있을까. 1년에 300점이라면 하루에 한 점 꼴이다. 물론 하루에 한 점은 크게 문제될 것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루에 여러 점을 찍어낸 적은 없었을까. 이미 작가의 코멘트에서 우리는 후자의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랬다’에서 말이다. 매우 바빠 보였던 그다. 이쯤에서 앞에서 설명한 것을 토대로 복습해보자면 당시 그의 작품은 단색화가 아니라 모노크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노크롬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장르보다 한국 전통의 얼과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단색화를 수도 없이 찍어냈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작가 스스로 당시의 작품들을 단색화로 인정하지 않는 꼴이다. 만일 일련의 작품들이 단색화로 팔려 나갔다면 그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에 대한 실례일지 모른다. 나아가 단색화의 정의에 도전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알파고는 모노크롬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단색화는 흉내 낼 수 없다. 그만큼 장르적 정의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정말 해당 작품이 위작인지 아닌지에 더 초점이 쏠려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사건의 결말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한국 단색화의 정체성에 있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종결되고 나면 다시 한 번 단색화가 왜 “Dansaekhwa"로 불리며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①카즈오 시라가(Kazuo Shirag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