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빛을 고정시키다
댄 플래빈(1933~1996)
빛과 색. 이 둘 중 유한한 것은 무엇인가. 아니 질문을 다시 해보자. 무엇이 더 무한한가. 무한이라는 것에 있어 비교는 성립되는가. 이런 물음은 그럴싸해 보여 무언가 답을 내놓아야 할 듯싶지만 사실은 그저 껍데기뿐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빛과 색 모두 유한한 구조 속에 가둬둘 수도 있고 무한히 느낄 수도 있는 것들이다.
댄 플래빈은 미국출신 작가로 부제에 나와 있듯 색으로 빛을 고정시키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던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 중에는 무제가 많았는데, 제목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그만의 공간감과 색채감이 이를 대변해준다.
서론에서 잠시 거론했지만 사실 빛은 우리에게 있어 무한함을 상징하는 대상이다. 우주에서 쏜 빛은 지금도 어디쯤 여행 중이라고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았는가. 이러한 빛을 가둬 두는 역할로 댄 플래빈은 색을 선택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빛으로 가득하다.
아니, 색으로 가득하다. 무엇이 더 나은 표현인지 모를 그의 작품들에서 우리는 그의 미적 감각과 함께 무한함을 잠시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그의 작품은 빛을 발산하는 발광체 자체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없다. 여기에, 그 작품이 발산하는 빛이 도달하는 곳까지 더해져 그 작품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댄 플래빈의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지 색을 뿜어내는 그 빛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한 걸음 떨어져 그 빛이 감싸는 공간 모두를 작품으로써 바라보고 즐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댄 플래빈의 작품은 하나로 특정 지을 수 있는 것부터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빛을 더해 그 존재감을 증폭시키는 것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구겐하임 미술관 전체를 온갖 색채로 물들였던 그의 작업은 하나의 작품명으로 특정 짓기는 어렵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을 더 풍요로워 보이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작품성은 단지 빛을 색으로 나누어 표현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공간에 오묘하게 뒤섞인 색채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서있는 그 공간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댄 플래빈이 구현한 색감의 조합은 그야말로 과감하고 신선했다.
때로는 같은 계열의 색감을 나열하여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했고 때로는 보색 개념을 과감하게 깨뜨려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그의 일관된 공통점은 빛이 없는 외부공간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격리시켜 새로운 세계로 불러들인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회화와 같이 작가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 분야에서 댄 플래빈은 생전에 자신만의 색깔을 확고히 드러낸 인물이었다. 빛과 색,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이것을 그는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곳에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그려내었다.
11월 29일은 댄 플래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은 올초 개관전에 댄 플래빈을 선택했고 pkm갤러리는 지난달까지 댄플래빈 기획전을 열었다. 이미 오래전 작고한 고인의 인생은 유한했지만 그가 세계 곳곳에 색칠한 빛은 지금도 여전히, 무한히, 관객이 서있는 그곳을 영원의 세계로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