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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공 갤러리의 미술 이야기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 현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by
고대영
Jan 24. 2020
구름(남한, 북한), 2019 ©Leandro Erlich [사진=고데영]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들은 우리가 경험 중인 현실(환영)과 실재 간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대표작 '수영장'이 그렇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이 현상이 과연 현실이 맞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다.
서울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그보다도 한 층 더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엔 현실과 실재를 넘어, 그 안에서 나와 타자 간의 경계마저 건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탈의실'이다.
탈의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다만 여태 그랬듯, 레안드로의 탈의실은 거울 또는 공간으로 채워져 혼란을 일으킨다.
사방이 거울과 거울 없는 공간으로 끝없이 뒤섞인 그곳에서 우리는 한 순간 바보가 된다.
탈의실, 2008 ©Leandro Erlich [사진=고데영]
거울이란, 나를 비추는 것. 그러나 그의 공간에서는 내 자신이 투영되지 않음에도 이것이 막혀 있는지, 뚫려 있는지 두려움을 일으킨다. (심지어 거울인가 하며 손을 대보지만 잠깐, 내가 안 비치잖아?)
클라이막스는 바로 타자와의 조우다. 수없이 많은 탈의실 안에서 현실 감각을 잃은 채 주변을 둘러보던 관객은 이내 옆 공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설 때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왼편의 이 벽이 거울도, 공간도 아닌 타자가 들어선 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나라는 주체와 타자라는 대상 간의 경계 역시 일시적이거나 모호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모든 작품을 지나면, 그의 영감이 반영된 영화 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껏 작품 속에서 혼돈을 겪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게 완벽한 쇼였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어쩌면 작가의 머릿속을 탐험한 후, 다시 미술관 밖을 나서기 전 관객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전시 구조다.
전시는 3월까지.
그의 대표작 '수영장'. 이번 전시에선 석가탑에서 비롯한 '탑의 그림자'라는 작품으로 변형돼 전시 중이다.
탑의 그림자, 2019 ©Leandro Erlich [사진=고데영]
커밍 순, 2019 ©Leandro Erlich [사진=고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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