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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영 Jun 03. 2018

<잃어버린 세계>, 페미니즘 미술의 확장성을 말하다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사진=고데영]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잃어버린 세계’는 그간 미술관 측이 정기적으로 해오던 소장작품 기획전 중 하나로, 이번엔 자연과의 관계를 콘셉트로 하고 있다.


한 개의 전시실을 총 세 챕터로 나눈 이번 전시는 1. 단색화를 필두로 한 ‘자연과의 몰아적 조응’ 2. 여성성의 세계가 반영된 ‘여성적 생명력과 기억’ 3. 온라인-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한 도전 등으로 나뉘어 있다.


다소 어려운 주제다. 어쩌면 주제는 그동안 수없이 접해온 것들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 대해 낯섦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끊임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의 합일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만 여겼던 과거에서 점차 유기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기존의 억압적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 그것이 한국의 미니멀리즘인 단색화를 이끌어냈고 그러한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주체가 갖는 특유의 치유력을 돌아보게 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로의 도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자연과의 관계를 고민해 온 작가들의 작품으로 표현됐다.


특히 전시 두 번째 테마인 ‘여성적 생명력과 기억’은 거대 사회 속 주변인으로 인식돼 온 여성이 자연과의 일체화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주변인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적 타자로서 그간 여성이 이끌어온 생명력과 치유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중심적 위치에 서야할 때인 것이다.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 ©윤석남, 2011 [사진=고데영]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석남 작가의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은 그간 작가가 다뤄온 어머니라는 주체에 대해 보다 넓게 그려냈다. 2000년대 들어 인간의 이기심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이후 자연과 생명 현상을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 결과 탄생한 이 작품은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지모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여성보다 모성에 가까운 접근이지만 결국 모성은 여성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가 굳이 ‘여성성’, ‘여성적’이라는 언급을 한데는 분명 그 의도가 있어 보인다. 최근 페미니즘에서 경계하는 한국 사회 내 ‘여성스러움’과는 분명 다른 결이다.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여성성을 토대로 자연과의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망각에 부치는 노래 ©루이스 부르주아, 2004 [사진=고데영]

윤석남 작가의 작품이 빛이라는 매개를 통해 여성의 치유력을 표현했다면 루이스 부르주아는 상대적으로 의지적인 모습을 보였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결혼 후부터 노년이 되기까지 자신이 입은 옷과 사용하던 천을 바느질 해 하나의 그림책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아픔과 상처를 잊기 위해선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며 바느질이 그 모든 것을 엮어 치유할 수 있다고 여겼다.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잊기 위함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단인 것이다.


여성의 기억과 치유에 대해 윤석남과 루이스 부르주아가 보이는 표현은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결코 소극적/적극적, 수동적/주체적 등으로 폄하할 순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데 있어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2012 [사진=고데영]

김나영&그레고리 마스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우리가 알던 조각상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수백 수천년간 여성 신체에 대한 페티시즘으로 정의돼 온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상상하지 못한 매개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경직된 여성에 대한 인식을 잠시 멈추게 한다. 비너스의 머리는 따로 바닥에 떼어냈고 머리가 떨어져 나간 빈자리는 밝은 조명이 대신한다. 머리 부분 역시 밝은 조명이 속을 비춘다. 다리 부분은 바둑판이 대신하고 있다. 뒤편의 캔버스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섹슈얼리티를 뜻하는 문구가 보인다.


그 밖에도 유수의 작가들이 여성성의 세계에 대해 자신만의 그림을 풀어나가고 있다. 흔히 바다와 땅을 비롯한 자연을 표현할 때 쓰이던 ‘여성’의 존재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애교’와 ‘조신함’으로 대변되던 여성스러움이 아닌, ‘포용력’과 ‘치유력’이 뛰어난 ‘여성성’으로 접근한다. 전시는 7월 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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