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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영 Jul 01. 2018

<류이치 사카모토展>, 화려함을 벗고 얻어낸 삶의 동력

피크닉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 I F E 展  [사진=고데영]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의 낯익는, 그를 대표하는 멜로디가 들려 온다. 세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그의 과거 모습은 거기까지다. 이후부터는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그의 현재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회현역 부근에 위치한 피크닉[Piknic]에선 개관전시가 한창이다. 오픈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사카모토 류이치를 알게된 계기는 그의 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을 듣게 되면서였다. 일본 음악가 특유의 뉴에이지 음악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다. 전시장에서 들려온 'Rain' 역시 그를 국내에 알린 대표 곡이다. 이러한 곡들은 대개가 극적이거나 멜로디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그의 전시에서 이러한 모습은 첫 광경이 끝이다. 마치 그의 과거 모습에 익숙한 관객들을 위한 자그마한 예의 혹은 센스 같았다.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는 공간부터는 그의 새 가치관이 드러난다. 암 투병 생활을 거친 그는 이후 조금 더 원초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있는 그대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풀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등이 그러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water state 1'이다. 아시아 지역의 우천 상황을 빅데이터로 수집해 작은 공간에 구현해냈다. 수백 개의 장치를 통해 떨어지는 물(비)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낸 류이치는, 빅데이터를 통해 순간 순간의 날씨를 음악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water state 1 ©Ryuichi Sakamoto, [사진=고데영]

비가 적게 내리는 어느 곳을 재현할 때는 느린 템포의 선율이 흐르다가도 소나기와 같은 분위기로 전환될 때는 멜로디 역시 잘게 나눈 박자 속에 현란하게 춤을 춘다.


사실 내리는 비를 보며 특이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비를 오거나 오지 않는 것으로 구분했던 지난날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내리는 비도 다 같은 비가 아니며,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리는 비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지역에선 특정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날 전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무수한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작품 속 비가 만들어내는 파동이 많아질수록 멜로디는 극에 달했고 그러한 과정이 평범하게 지나치던 일상의 순간들을 극대화 해냈다. 실제로 작품 속 떨어지는 물이 멜로디에 영향을 주는 형태였기에 결코 그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아 몰입에 도움을 주었다.


그 밖에도 류이치는 백남준을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며 본질적인 소리에 집중하려 했다. 그 모든 모습은 전시장 내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류이치가 보여준 모습은 화려함의 옷을 벗고 자연을 탐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지루하거나 무기력하지 않다. 오히려 더 힘이 느껴진다. 우리 곁에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에 대해 류이치는 집중하고 있었고, 그 소리는 결코 홀연히 증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빗소리를 눈과 귀로 겪으며 일상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다.

Ryuichi Sakamoto, [사진=DAZE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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