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다!” 새벽에 나를 깨운 미얀마의 절규

by 고대영

그렇게 이란 이슈로 1월을 보낸 나는 ‘아, 국제부가 이런 곳이구나’ 새삼 실감했다. 이제 당분간 별일 없겠지 생각했다. 과거 기업과 증권을 출입한 경험에서 보자면 큰 파도가 온 다음엔 잠시 쉴 수 있다. 작은 파도를 그냥 흘려보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

제목 없음.png 미얀마의 한 시민이 내게 보내준 이미지.

하지만 국제부는 달랐다. 전 세계 국가들이 서로 합을 맞추고 일을 터뜨리는 게 아니었다. 곳곳에서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계속 터졌다. 2월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였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사태는 2월 초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의 재집권에 맞서며 벌어졌다. 이미 쿠데타가 터지기 며칠 전부터 현지에선 조짐이 있었다. 현지 한국 대사관 역시 공지를 통해 쿠데타 가능성을 알린 상황. 결국 터질 게 터진 듯한 쿠데타는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사태로 번졌다.


시위대 끝자락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서있던 소녀는 그대로 저격수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한 아이의 아빠는 총에 맞아 숨진 아이를 안고서 오열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미얀마 정부부처에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미얀마어를 할 줄 모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배워 놨을 것을. 그래도 일단 국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번엔 군부에 의해 구금된 민주진영 인사들에게 페이스북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들은 구금 중에도 꾸준히 페이스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전화는 받지 않았다.


결국 이메일을 각 부처에 보냈다. 소름 돋게도 한 부처를 제외한 모든 부처 서버가 차단된 상태였다. 내가 보낸 이메일이 문제없이 전달된 곳은 국방부였다. 나머진 모두 반송됐다.


물론 국방부도 회신은 하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아, 이메일은 가지도 않아,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하나, 국제기구에 물어보는 것뿐이다. 가장 큰 유엔의 답변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해 그날부터 주야장천 연락을 취했다. 대변인, 부대변인, 사무총장, 모두 다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규탄한다는 공식 입장만 낸 상황이었다. 안보리에선 결의안이 통과하지 못했고, 특사는 현지에 파견되지 못한 채 인근 태국에서 머물고 있었다.


여러 창구를 통해 컨택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미친놈처럼 구는 것이다. 나는 잠을 자지 않았다.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유엔 관계자들 SNS에 알림을 설정하고 밤새 침대에 기대앉았다. 그러다 그들 중 누구라도 게시물을 올리면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았다.


“왜 이메일을 안 보시죠? 기자가 묻는데 답은 안 하나요?”


안 해도 된다. 기자가 뭐라고. 그래도 해달라는 나의 간곡하고 부드러운 요청이었다. 사실 공개할 수 없지만 군부 측엔 더 한 메시지도 남겼다. 어쨌든 난 그새 SNS 상에서 유엔 괴롭히는 ‘인싸’가 됐고, 급기야 미얀마 시민들로 추정되는 계정들이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대변인 실에서 답이 왔다. 대변인 트윗에 15초 만에 답을 단 결과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보관 직급의 관계자가 오래전 내가 보낸 이메일을 끄집어 와 회신했다.


사실 답변은 뻔하다. 노력 중이며, 우리도 애가 탄다는 내용.



하지만 분명한 게 한 가지 있다. 공식 성명과 언론 인터뷰엔 차이가 있다는 것. 인터뷰에선 온도가 느껴지고 단어 하나하나에 강약이 담긴다. 반면 성명은 드라이한 느낌이 강하다.


내가 받은 답변에는 ‘Agreeable’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특사 파견과 관련한 질문이었는데,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과거 홈페이지를 통해 저 단어를 ‘수용 가능한’으로 명기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 뜻은 상호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미국 하원의 한미동맹 결의안에서도,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도 쓰인 단어란 말이다.


결국 유엔은 직접적으로 특정 국가를 가리키진 않았지만, 저 단어로 내게 신호를 줬다. 누군가 동의하지 않아서, 수용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서 특사 파견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러시아였다.


유엔은 생각보다 방대한 답변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열심인지 알렸다. 기사는 적당히 길게 썼다. 그리고 트위터에 기사를 올렸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휴대폰은 불이 나 있었다. 내 생애 그렇게 많은 답글과 좋아요와 리트윗과 인용을 당해보긴 처음이다. 살려 달라는 사람부터 실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한 사람들까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렇게 심장이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제목 없음.png 내 트위터.

국내 온라인상엔 또다시 새로운 공론의 장이 펼쳐졌다. ‘로힝야 대학살.’ 로힝야족이 대학살을 당하던 당시 수치 고문과 민주진영은 사태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수치 고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해 해명해야 했다. 이를 토대로 이들이 군부 쿠데타를 당해도 싸다는 의견이 더러 있었다. 세상에 맞아도 싼 행동이 있나 모르겠다. 판단은 각자에게.


물론 이번에도 상황은 조슈아를 인터뷰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기사를 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 홍콩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사망자가 연일 나오는 상황이라 더 긴박했다는 것. 도와달라는데 해줄 게 없었다. 기사만 계속 써댈 뿐.


공부에 끝이 없듯이 취재에도 끝은 없기 마련이다. 그래도 우린 몸이 하나이기에 적정선에서 취재를 끊어내고 다른 이슈에 매달려야 한다. 기존 이슈는 적당히 팔로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 사태는 끊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내가 그렇게 많은 절규와 외침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 이슈는 아마 앞으로도 놓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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