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한 화상 인터뷰, IAEA 사무총장과의 15분

by 고대영

사실 그동안 취재할 때마다 내 나름대로 방식은 확고했다. 기관이나 단체의 멘트가 필요할 땐 이메일과 텍스트 중심의 SNS를 활용하고, 유명인의 멘트를 받을 땐 화상 인터뷰를 요청하는 식이다. 아쉽게도 모든 인터뷰는 글과 음성 메시지를 통해 이뤄졌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5월 초로 기억한다.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바다에 뿌리면 흐르고 흘러 우리에게 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는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이미 마신 듯한 그의 망언은 우리의 공분만 샀다.


더 논란이 된 건 미국과 IAEA의 입장이다. 미국은 중립을 지키면서도 일본이 규정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실상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IAEA 역시 규정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나는 곧바로 IAEA 측에 그로시 사무총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2주 정도 대변인실과 컨택했지만, 답은 전혀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과 직결된 문제인 터라 하루가 급했지만, 그들은 침묵했다. 매너 있게 행동하고 싶었지만, 또 이들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그로시 사무총장에게 디엠을 보냈다.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답이 없는 걸 보니 그냥 제가 알아서 써도 되는 거겠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영화 타짜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깡패가 된 건 아니었지만, 아마 그때 사무총장이 답을 주지 않았다면 또 모르겠다.


디엠 효과는 확실했다.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무총장에게서 답이 왔다. 이러지 말고 대변인실을 통해 정식적으로 요청하라는 것. 화를 돋우는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안 해봤을까 봐요?”


그제야 사무총장은 본인이 직접 대변인실에 일러두겠다고 했다. 몇 분 뒤, 2주 동안 숱한 연락에도 응하지 않던 대변인에게서 답이 왔다. 아이폰으로 답을 한 걸 보니 급하게 보낸 것 같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일정을 조율하겠다고 전했다.


이제 됐구나, 싶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리던 중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접했다. 연합뉴스와 KBS가 각각 국영통신사와 공영방송 자격으로 같은 날 인터뷰를 내보낸 것이다. 우린 이런 걸 흔히 ‘물 먹었다’고 표현한다. 나는 다시 대변인에게 연락했다. 돌아온 답은 ‘지금 바쁘다’였다.


그렇게 다시 2주가 흐르고, 결국 인터뷰를 요청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나버렸다. 참다못해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매우 민감한 질문과 함께. '이왕 늦어진 인터뷰, 진하게 한번 하자'는 게 내가 보낸 메시지였다. 인터뷰를 자꾸 미루면 질문이 추가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줬다. 사실 이제 와서 인터뷰를 하더라도 이미 보도된 인터뷰들과 내용이 같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나로선 당연한 행동이었다.


칼답이 왔다. 다음 주 시간 되냐면서. 그야말로 훅 들어왔다. 시간은 15분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오케이 했다. 시간을 더 뺏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문제는 그들이 요구하는 인터뷰 방식이었다. 대변인은 내게 줌 대신 웹엑스를 쓰자고 했다. 앞서 나간 인터뷰 화면들을 보면 줌인 거 같았지만, 난데없이 웹엑스를 쓰자는 것이다. 웹엑스는 채팅방을 만든 호스트만 영상을 녹화할 수 있다. 초대받은 게스트는 녹화가 제한된다. 일선 학교에서 교사들이 줌에서 웹엑스로 갈아탄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무단 녹화에 부담을 느낀 교사들이 녹화를 제한하기 위한 조처였다. IAEA도 같은 이유였을까.


고민했다. 내 영어 실력이 유창하지 못한 탓에 듣자마자 모든 내용을 받아 적을 자신도 없었으며, 그래도 기사로 내려면 대화하는 모습 정도는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 난 해답을 찾는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고민 끝에 유튜버들이 흔히 쓴다는 라이브용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찾아 설치했다. 쉽게 말해 웹엑스를 통해 대화를 나누지만, 이것조차 하나의 생방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 생방을 나만 볼 수 있게 처리하고 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인터뷰 전까지 몇 번의 리허설을 거쳤다. 평소 줌만 쓰다가 이제 정말 별의별 짓을 하는구나 싶었다. 인터뷰 시간은 오후 일과 도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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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외신을 처리하던 중 채팅방에 들어오라는 IAEA의 메시지를 받고 인터뷰는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사무총장이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평소 뉴스에서 보던 모습과 살짝 달라 보였다. 머리 스타일과 안경 낀 모습은 같았지만,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자리를 뜨는 게 아닌가.


‘멘붕’이 왔다. 왜 갑자기 사라졌지? 그러다 갑자기 진짜 사무총장이 웃으며 앉았다. 알고 보니 방금 그 남자는 대변인이었다. 왜 이리 닮은 건지.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했고 나도 자체 생방송 중계를 시작했다. 혹시 몰라 휴대폰 녹음기도 켜놨다. 주어진 15분은 정말 빨랐다. 대화 중간중간 사무총장이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건넨 사전 질문지는 읽어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질문 다섯 개 중 네 개를 마쳤을 때 이미 15분 가까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사무총장은 마지막 질문까지 받아줬다. 참고로 마지막 질문은 일본의 후원금이 IAEA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질문 중 가장 민감한 질문이었다.


20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순식간에 끝났고 난 태연하게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그리고 주말 간 답변을 정리해 다음 출근 때 내보냈다.



늘 화상 인터뷰를 고대했는데 막상 해보니 별 게 아니었다. 솔직한 평가를 하자면 모양새는 화상이 낫지만,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받는다는 측면에선 서면이 더 나은 것 같다. 가장 좋은 점은 캡처 화면을 SNS 프사로 활용하기 좋다는 점이다.


기사가 보도되고 많은 연락을 받았다. 멋지다, 자랑스럽다 등등. 그런 말을 들으려 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결국 기자는 누군가 기사를 읽고 반응을 해줬을 때 가장 기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커리어를 쌓는 나의 개인적인 입장일 뿐, IAEA는 결국 한국의 반발에도 예정 수순을 밟기로 했다. 일본은 언젠간 오염수를 바다로 보낼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후 혹은 수십 년 후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긍정적이지 않을 거라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 그래도 이번 취재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했구나 싶었다. IAEA 사무총장의 마지막 멘트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됐다. 내게 보내준 모든 질문과 의혹을 검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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