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은 매달 하나씩 생기는가. 2월이 가니 3월이 왔다. 3월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던 이슈가 있었다. 이란 선박 나포에 이어 다시 한번 국제이슈가 국내 이슈로 스며든 사건. 하버드대 마크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왜곡한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
램지어 사태에는 아마 한국에 있는 많은 기자들이 뛰어들었을 것이다. 국민적 공분을 산 그의 발언과 행태는 두려움 모르고 퍼져갔고 너도나도 취재 경쟁에 덤벼들었다. 문제는 과거 그가 기고했던 칼럼과 외신 보도 외엔 이렇다 할 전할 내용이 없었다는 거다. 램지어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었고 심지어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이번에도 나는 램지어와 그가 소속된 하버드 로스쿨, 그의 논문을 게재하려 하는 학술지 편집장들에게 연락을 했다. 수신확인은 꾸준히 됐지만, 답변은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 해답을 찾을 것이고 나 개인 또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이번엔 이전 취재들과 달리 가만히 고민에 빠졌다. 딱히 행동으로 옮길 게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 보니 의외의 곳에서 공간이 열렸다. 당시 트위터상에 일본 우익 단체 멤버들이 이른바 ‘램지어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한 것.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내가 응원 메일을 보냈더니 고맙다고 답이 오더라!”
그래서 궁금했다. 램지어가 정말 우익 단체에만 답을 해주는 것인가? 심지어 연합뉴스도 확실하진 않다는 말과 함께 이 사실을 보도했다.
나는 결심했다. 오징어게임에서 형사가 일꾼 옷을 입고 뛰어들었듯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기자로서 고민의 기로에 선 순간이었다. 언론 윤리.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다. 기자인 것을 밝히지 않고 램지어에게 접근한다는 것. 일종의 훼이크다. 통상 기자는 취재 당시 본인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잠입 취재처럼 부득이한 경우 공익의 크기 등을 따져보고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나는 지금 처한 상황이 그렇게 윤리에 어긋나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심지어 공익을 넘어 국익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빨간 일꾼복을 입었다. 어쨌든 대화가 돼야 나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번엔 기존 회사 이메일 대신 네이버 메일을 사용했고 기존 닉네임도 일본식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메일 제목부터 내용까지 전부 일본어로 치장했다. 입에 담기 싫지만, 첫 문장은 '친애하는 교수님께'였다.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며 내가 얻고자 한 것은 학술지 발간이 임박한 시점에서 정말 그의 논문이 아무런 수정 없이 게재될 것인지에 대한 확답이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고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답이 왔다.
내가 그토록 영어 메일을 보낼 땐 거들떠도 보지 않던 그가 내게 답을 했다. 심지어 아주 친절하게 게재될 원본을 파일로 첨부해서 말이다. 늦은 밤이었다. 나는 원본을 받자마자 곧바로 기존 원본과 비교 대조했다.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사실 해당 논문은 작년 말에 공개된 글이다. 다만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학술지에 게재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논문 표지에 붙어있는 크로스마크를 클릭해 들어가 봤다. 크로스마크에는 출간 예정일이 3월로 적혀 있었고 텍스트/데이터 마이닝 유효 시점은 3월 1일로 등록돼 있었다. 쉽게 말해 이날 기점으로 논문을 인용해도 된다는 의미다.
나는 구체적인 대화를 위해 기자임을 밝히고 추가 질문을 보냈다. 놀랐는지 램지어는 그 뒤로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날이 밝고 나는 학술지에 수정 없는 원본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사실 보도 당시 한 한국인 교수가 램지어로부터 실수를 자백받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램지어가 입장을 선회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내 기사에 대한 반신반의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구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램지어 본인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기사가 나간 직후 해당 학술지가 보도자료를 냈다. 원본 그대로 학술지에 넣기로 했다는 공식 입장이었다. 모든 매체가 받아 적었고 나는 어쨌든 하루빨리 보도한 꼴이 돼 회사로부터 좋은 소리를 들었다.
램지어는 이제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사실 국내 언론들이 쏟아낸 보도들은 그가 원했던 것일지 모른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 학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일일 지 모르겠다. 특히 자신이 쓴 논문을 몇 달 후 스스로 다시 요약해 언론사에 기고했던 램지어 정도의 ‘관종’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본다.
지금은 다시 잠잠해진 이슈다. 램지어는 또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을까. 하버드 내 램지어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다. 일본 미쓰비시의 지원을 받아 일본 법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것이다. 아마 죽기 전까지 자신의 논리를 펼칠 것이라 본다.
늦었지만, 램지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친애한다는 말, 그 밖에 모든 말, 그거 다 우소데스(うそです, 거짓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