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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저씨

<가족>의 정의

by 이매송이

난 보통 자기 전 담배를 태운다. 수면제를 먹기 전후로 밖에 나가서 피우는데, 집이 1층이라 귀찮지가 않다.

그때 마다 거의 매번 보는 아저씨가 있다. 지금까지

관찰해 본 결과, 아마도 경비일을 하시는 것 같고, 근무 환경은 2교대 혹은 3교대로 보인다. 내 옆집에 살고, 20대 초반의 아들이 있으며, 매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는 아내가 있다. 그 여성분은 출퇴근을 간헐적으로 한다.

나는 건물 건너편에서, 그는 현관 앞에서 흡연을 한다. 늘 고민 가득한 표정을 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본인이 만든 재떨이에 몇 개피를 버리고 들어간다. 바닥에 툭 떨어뜨리지 않는 것과 침을 뱉지 않는 것은 나와 같으나 고작 세네 걸음 차이 때문에 윗층의 민원을 받았다. 그래도 꾸준히 빌라 앞 인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집과 우리집은 붙어 있어 매번 후드로 그날의 메뉴가 보인다. 보글보글 끓이는 찌개나 국은 매일 상에 오른다. 나는 7년 동안 가스레인지를 쓴 적이 없다.

나는 5-60대 남자를 매우 무서워 하는데, 심지어 옆집 남자는 험상궂게 생겼다. 그럼에도 괜찮은 이유는 이웃이어서가 아니라 냄새다. 고소한 참기름, 된장찌개, 그 밖에 수많은 식탁의 음식을 내어 주는 가족이 있는 (어쩌면) 가장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뭐냐는 나의 질문에 한 어른은 ‘미워도, 미친 듯이 싸우고 난 후에도, 상대의 식사가 걱정이 되는 사이.’ 라고 말하셨다. 그렇다. 그는 가정이 있다. 70이

다 되어가 보이지만 함께 할 피로 묶인 사람과 산다.

그에 비해 나는 혼자다. 끼니는 대충 때우고, 빨래는 미친 듯이 한다. 이 공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옷과 책이다. 친구들은 집이 아니라 작업실 같다고 했다. 주방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 한다. 의식주에서 하나가 빠졌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곧 이사 갈 집에서도 난 요리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조리 또한 마찬가지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봉투 없는 김밥이 제일 편하다. 그것도 귀찮으면 소량 포장된 시리얼 혹은 바닐라 라떼, 동네 카페의 그릭 요거트.

내가 완벽한 사회적 인간이라는 근거는 내 외로움이 괴로움으로 변해서도, 밥상이 없어서도 아니다. 난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비로소 밥 다운 밥을 먹는다. 20대 때는 배가 터질 거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살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귀찮음의 문제와는 다르다. 세탁기와 청소기는 매일 돌아가니까.

한상에서 같은 반찬을 공유하는 사이가 가족인 건가. 가족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어떤 종교 같다는 누군가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럼 나는 가족을 어떻게 정의 해야 할까? ‘낳고 안 낳고, 함께 살고 안 살고’ 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 밤은 이 주제를 골똘히 고민하며 보내면 되겠다. 덕분에 긴 밤이 짧아졌으면 좋겠다. 일찍 자면 하루가 길다. 기억이 나는 어린이 시절부터 새벽을 즐겼지만, 이제는 원하지 않는다. 그 취미를 버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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