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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

by 이매송이

마음이 어려울 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외로울 때는 과식을 해도 공허하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한 시간 마다 무엇인가를 입안에 집어 넣는다. 지금이 그 시기다.


10시 반에 수면제를 삼키고 잠들었다. 12시 반에 깨어 나도 모르게 편의점으로 가 도시락을 산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기 전에도 이미 컵 시리얼을 6개는 해치웠다.


그 이후로 1시간 마다 악몽을 꾸며 깼다. 두 시, 세 시, 네 시, 다섯 시……. 악마가 나오기도 하고, 잃은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삶은 아주 평범한 것에도 많은 부분을 요구하는 게 아닐까 생각 한다.


작년에 부부 상담을 요청한 친구가 있었다. 제 3자의 시선으로 봐 달라는 거였다. 서로 부딪히는 이유의 모든 원인이 아내에게 있었다. 그녀는 현실감이 없고, 바람기가 심했다. 본인도 잘 알 터인데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간 심리가 궁금했다.


나는 바른 말은 잘하고 거짓말은 못한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못한다. 주제가 진지해서 F가 아닌 T의 방식으로 느낀 점을 말해 주었다. 상대가 살이 쪄 가뜩이나 섹스를 하기 싫은데 적극적이지도 않아 불만이라는 문장이 이 날의 내용 중 중간 정도에 속한다. 저것을 기준으로 좀 더 날세고 혹은 무딘 문제가 존재 했다.


자기 편을 들어 주지 않자 울며 내게 냅킨통을 던졌다. 동성 친구에게 폭력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23년의 우정이 한번에 사라졌다. 당장 사라지고 싶었다. 남편이 불쌍해졌고, 그럼에도 노력해 보고 싶다는 그가 기이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어났다. 다신 그 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애처럼 구는 서른 여섯과 예뻐서 참아 보겠다는 서른 일곱이 징그러웠다. 나를 불러 이 화를 보게 하는가, 막막했다.


왜 이제 와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아니 저렇게 굴어도 받아 주는 사람이 곁을 지켜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일까.


누구는 나를 착하다고 하지만, 누누히 말했듯 나는

‘착하지 않아서 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다. 20대를 돌아보면 개차반이었다. 이매송이라는 애송이의 인성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 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정확한 표현은 매우 줄었다. 배려가 늘었고, 사랑이 깊어졌다. 바람에 팔랑이던 마음결은 제법 두꺼워졌고, 타인을 아끼게 되었다. 그만큼 겁도 늘었지만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걸 안다.


몇 주 째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싫었다. 아마도 내 안의 사랑이 마르고 있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한 권을 다 읽었다. 역시 울었지만 차분하게 가는 시간이 불안하지는 않았다. 혼자 있을 때도 끊임 없이 스스로를 판단 하고 증명 하려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래, 그럼 제법 괜찮은 날이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더 기뻤겠지만, 이제는 욕심을 내려 놀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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