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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꽃비를 좋아하던 친구

by 이매송이

Falling slowly.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 올 때면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쑥 하고 나타난다. 라라랜드 이전에 비긴 어게인이, 그보다 한참 전에 원스가 있었다. 수능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영화를 보러 갔는지 모르겠다. 주위에도 나랑 똑같은 놈이 하나 있었는데, 독서실에서 고개 숙이며 pmp로 원스를 보는 걸 발견하고는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난다. 말로는 야 대학 안 가고 싶냐, 으휴 미쳤냐, 인 서울 할 거야 말 거야 하며 나무랐는데, 실은 취향을 나눈 느낌이 들어 행복했다. 생각해 보니 삼거리 극장을 알고 김꽃비 배우를 좋아하던 동네 친구는 걔가 유일했다. 오랜만에 이 곡을 들으니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인스타 계정을 찾아 봤다. 애인과 서로 프로포즈를 하고 곧 결혼을 앞두었다. 나는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축하를 갈음한다. 쉽게 휘발 되던 걱정과 넘치는 체력을 가지고 살던 때 가득 찼던 우정들은 변질되지 않았다. 다만 빈 구멍 속으로 조금씩 빠져나가다가 어느새 잡히지 않을 뿐이다. 한아름 품을 수 없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예전에 이 자리에 바람이 잔뜩 불었고, 지금은 각자의 속도대로 흘러 어딘가에 발을 딛고 있다. 같이 쐴 수는 없어도 사실은 같은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이 달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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