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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린 비

by 이매송이

갑자기 내린 세찬 비에 놀란 마음들이 보인다. 내 옆의 소년은 반팔 반바지를 입고 덜덜 떨고 있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떤 여학생을 데리러 온 할아버지가 우산을 씌어 주어 내가 있는 정류장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나는 추워서 후디를 뒤집어 쓰고, 이 친구는 팔을 빼서 옷 안에 집어 넣었다. 몇 번 버스를 타냐고 물어 보니 아빠 차를 기다린단다. 서 있었을 뿐인데 바지가 잔뜩 젖어버린 나는, 아빠 오면 도로까지 데려다 줄게. 라고 말했다.

아마 나와 이 아이의 나이 차는 이 십 몇 년 쯤은 나겠지. 무언가를 기다릴 때 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모양은 같았다. 내 버스가 먼저 와 버렸고, 나는 ‘누나 우산 가져 가, 너 지금 엄청 춥잖아, 아빠 언제 올 줄 알고‘ 라고 말했고 걘 ‘아니, 괜찮아요,’ ‘떨고 있어 너 지금. 어리니까 받아도 돼.’ ‘아빠 올 거에요.’ ‘알았어, 그럼 잘 가.’ 하고 나는 7728을 탔다. 버스 창 사이로 나를 쳐다 보던 동그랗던 눈.

우리 엄마는 비 오는 날, 나를 데리러 온 적이 없었다. 초,중학교 때는 집이 아주 가까웠을 탓일 테고, 고등학교 때는 아직 미성년인 날 당신과 같은 어른으로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난 한번도 어린이인 적도, 어른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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