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말.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한 아이는 나에게 쉼 없이 질문을 던진다.
아직 말은 못 하는 터라,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치는 '어! 어!' 작은 한마디.
손으로 가리키는 저게 무엇인지 당장 말하라는 당당한 외침.
한참을 아이의 손 끝을 이리저리 따라다닌다.
"응, 저건 물이야!, 저건 사과야!, 이건 식탁!"
허공을 가르던 손 끝이 문득 나를 가리켰다.
'아빠'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순간 머뭇거렸다.
"응, 00이 아빠!"
아이가 던지는 단순한 질문에도 쉬이 허를 찔리는 복잡한 생각을 가진 하루였다.
아이에게 나는 '아빠'라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가능하다면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바라는.
다만, 세상이 가리키는 나는 여전히 내 이름 세 글자로 정의되기를 원한다.
내 이름 세 글자에는 과연 어떤 수식어가 붙을까. 아니, 이번에도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나는 어떤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었는가
27살, '아동복 공유/구독 서비스'라는 아이템으로 운 좋게 투자를 받아 법인을 설립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에게 젊은 스타트업 대표이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치기 어린 마음에 내 이름 세 글자 보다도 앞에 붙은 네 글자를 더 좋아했다.
흔히 어린 나이가 비즈니스에서 갖는 단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그 수식어가 생긴 것이 좋았다. 마치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찬, 이른 나이에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식어가 머릿속에 그려준 '나'라는 사람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탓일까.
수식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은 늘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서비스를 세상에 선보이고 수식어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증명하고 싶었다. 법인 설립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매일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만든 서비스를 세상에 선보였다. 서비스 오픈 첫날 실시간으로 집중된 트래픽에 서버가 다운되었다. 과분한 관심을 받았고 다수의 결제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축제는 채 한 달을 가지 못했고 머지않아 나에 대한 수식어가 바뀌었다.
'실패한'
투자자는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싶어 했고 나는 과거 조급한 마음에 제대로 된 지분 계약 조건을 고수하지 못했다. 갈등이 끊이질 않았고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다쳐 먼저 두 손을 든 건 나였다.
첫 사업에 처참히 실패하고 내가 만든 회사를 떠났다.
당시에는 새롭게 붙은 '실패했다'는 수식어가 지독히 견디기 힘들었다. 7년간 더 좋은 수식어를 얻기 위해 연이은 창업, 취업과 이직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수식어를 스스로 가진 뒤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수식어: 아름답고 강렬하게 또는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꾸미는 꾸밈말.
어떠한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을 갈망하는 모든 기준에 '내'가 아닌 '타인'이 존재했다.
늘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사람이고자 했고 그렇게 꾸며질수록 스스로는 더 공허함을 느꼈다.
참으로 쉬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서 애쓰는 시간 동안 '나'라는 존재가 방치된 기분. 새로운 마음을 먹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작가 이름을 지었다. 타인에게 보이기 좋은 수식어만 쫓아다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같은 의미의 이름.
'아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육아휴직한 아빠'라는 포장지보다는
'나'라는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자, 아빠이기 위해 휴직을 결정한 사람.
아마 이게 오롯이 나만을 위해 갈망한 첫 수식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