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졸고 있을때나 마음에 재충전이 필요할때 나는 길을 나선다. 편한 복장을 하고 배낭을 메고 나만의 당일치기 배낭여행을 떠난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날씨에 구애 받지도 않는다. 젊은이들 처럼 해외 배낭여행이나 멀리 지방 여행은 못가더라도 근처 기까운곳의 시골장을 향해 떠난다.
서울 강서구에 살때는 가끔 강화 재래시장을 찿았다. 가는날이 장날이면 더욱 좋았다. 버스를 타고 송정역 시외버스 정류장까지가서 강화행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는 오르는 순간부터 시내버스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체로 승객들의 짐이 많고 젊은이들보다 나이드신 아주머니들이 많은 편이다. 버스가 김포공항 앞을 지나 김포시로 접어들면 그쯤에서 부터 논밭이 보이고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지금은 김포시가 신도시의 면모를 깆추고 아파트단지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내가 살던 80년대의 김포가도는 평온한 전원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가끔 가던 곳임에도 갈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계절따라 날씨따라 또 내기분에따라 보이는것과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 장에가는 일은 무한한자유와 여유를 누리는 호사가 된다. 목적없이 혼자 가는 여행길은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새롭게 보여지는 것들과 마주 하게되고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깊은밤 고요하고 오붓한 나만의 시간이 좋아 잠자고 싶지않고 좋은글도 읽고싶고 좋은 음악도 듣고 싶을때처럼 혼자가는 여행의 시간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혼자만 느끼는 정겨운시간, 포실한 마음이 된다. 화창한 날도 좋고 비가 오거나 눈이 휘날려도 좋다. 나는 계절따라 날씨따라 달라지는 큰그림의 수채화를 감상하며 여행할수 있을테니까.
떠날때마다 모자와 안경은 필수다. 여행의 필수품 이기도하고, 특히 썬그라스는 내게 안정감을 준다. 누구와도 시선을 나누고 싶지않은, 온전히 혼자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버스 승객들이나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몰래 살펴보는 나의 이기적인 취미를 도와주는 것도 썬그라스다.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며 나는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성격과 살아가는 상황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잘 늙어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게 된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하고 그사람의 마음이 그사람을 만든다고도 한다. 어릴적 읽은 호손의 (큰 바위얼굴)이 주는 교훈도 잊지않고
있다. 그사람의 생각과 습관이 그의 얼굴을 만든다는데, 나는 어떤 얼굴을 만들어 가고 있을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김포평야의 풍경을 감상하며 머릿 속에 많은 생각들을 가득 채울무렵 버스는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건너고 있다. 강화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건너편 강화 장으로 간다. 장터에 들어서면 나의 모든 욕심과 불만은 게으르고 사치스런 자의 푸념이 되고만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듯 내마음도 맑은 공기로 환기를 시키는 시간이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익숙한 풍경들이 정겹다. 딱히 볼일이 있는것도 아니다. 텅빈 마음으로 장을 한바퀴 돌아보며 구경을 할것이다.
도착하면 대개 정오쯤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우선 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전에 들렀던 백반집에서 "밴댕이구이 백반"을 주문한다. 장터 좌판의자에 앉아 혼자 먹는 점심도 나만의 특별한 자유다. 연탄불에 왕소금을 뿌려 구워주는 밴댕이 한접시와 갓지은 밥에 순무김치며 밑반찬이 5000원이다(그때는 그랬다). 식사후에는 손수레를 끌며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아줌마 에게 커피한잔을 주문한다.
강화가 섬이므로 지역 특성상 해산물과 젓갈이 많고 농산물, 농기구, 비료, 의류등 없는게 없는것 같다. 새싹이 움트기엔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할머니들이 냉이를 내놓고 팔고있다. 분명 하우스 냉이는 아니다. 냉이 한바구니를 사고 작달막한 조선파도 한무더기 산다. 마트에서 파는 키다리 대파보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강화에 왔으니 밴댕이 젓도 한통 산다. 잘익은 밴댕이젓은 앤쵸비 맛이 난다. 겉절이 할때나 서양요리 흉내를 낼때 요긴하게 쓸것이다.
장에 올때마다 모두들 참으로 열심히 산다는걸 느낀다. 이렇듯 성실한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더나은 다음세대를 만든다는걸 알게 된다.
조사라도 나온 사람처럼 장터 구석까지 한바퀴 돌고 임무를 마친 듯 집으로 향한다.
장터의 활력과 생동감을 나의 마음에도 한가득 불어넣고 버스를 탄다.
길떠나고 싶을때 떠날 수 있는 여건과 건강이 허락됨을 감사하며 달리는 버스의자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취한다. 느릿한 오후의 햇살은 김포마을을 더듬고 나는 차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나의 일상을 향해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