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여로

제1부

by 김영자

드디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황교장은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나섰다. 이 안도감, 이 편안함, 이 익숙함은 무얼가? 서둘러 찿아갈 내집이 있는것도 아니고 반겨줄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것도 아니련만 대한민국, 서울땅에 서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했다.11월의 날씨는 조금 서늘했고 길가 은행나무들은 보기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얼마만에 맞는 가을풍경인가. 황교장은 심호을 했다. 머리가 운해진다.

김포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강서구청쪽으로 향했다. 우장산근처 아파트에서 아내와 살때, 아침운동하며 알고지낸 준구씨네 모텔을 찿았다. 마침 모텔을 지키고 있던 준구씨가 펄쩍뛰며 반긴다. "아니 교장선생님이 웬일이세요? 언제 오셨어요?" 준구씨가 물었다.

"아 예 지금 오는길입니다. 잘 지내셨죠? 서울이 궁금해서 왔습니다 하하. 한달정도 쉬다갈 조용한 방 하나 주십시요." 여동생 집도있고 친척이나 친구들 집도 있으나 부담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준구씨가 안내한 이층방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70을 넘은 나이에 모텔방에 홀로 투숙 한다는게 낯설고 울적했다. 몇년전만 해도 아내와 함께 별 불편없이 살고 있었다. 아내는 대부분 하루 세끼 따듯한 밥상을 차리고 그들은 함께 식사를 했다. 황교장은 그것이 그렇게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줄 몰랐다. 오히려 가끔, "밥이 좀 질군", "국이 짜졌네", "고기가 질겨"라며 투정을 했고 그러면 아내는 눈을 흘겼다. 생각하니 너무나 그립고 돌아가고싶은 푸근한 나날들다.


아내가 살았을 때에는 가끔 강화 재래시장에도 함께 가고 맛집을 찾기도 했다.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남해안이나 제주도로 여행도 갔고 그럴땐 그곳 호텔이나 모텔에 투숙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홀로 모텔방을 찿아드니 삭막한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황교장은 커튼을 제쳐 창밖을 한번 내다보고 샤워를 했다. 밀려오는 잡념들을 씻어내듯 샤워를했다. 샤워를 마친 그는 침대위에 대자로 누웠다. 아내와 살던집 만은 못해도 말레이시아 아들네 집보다는 한결 오붓했다. TV를 켰다. 낯익고 정다운 화면이다. 채널을 돌려가며 방송프로를 뒤적이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둑하다. 시계를 보니 저녁6시,시장기도 느껴진다. 황교장은 옷을 챙겨입고 근처 재래시장쪽으로 향했다. 자주 다니던길, 낯익은 정경들은 여전하다. 시장어귀 순댓국 집으로 들어섰다. 손님들이 몇 테이블 있었다. 황교장은 순댓국과 막걸리 한병을 주문 하고 실내를 둘러봤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온듯한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다정스러워 보였다. 황교장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경계인처럼,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뜨끈한 국물을 한수저 떴다. 정겨운맛, 몸과 마음을 녹이는 맛이다. 먹음직한 깎뚜기도 하나 집었다. "이게 진짜 깎뚜기지." 황교장은 중얼 거렸다. 그동안 국적불명의 여러음식들로 허기만 채우며 살아온것 같았다. 막걸리도 한잔 마셨다. 목을타고 쩌르르 내려가는 막걸리에 긴장이 풀리고 오랜 피로와 외로움이 녹아내리는듯 했다.

모텔로 돌아온 황교장은 여동생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귀국을 알렸다.

막걸리 덕인지 숙면을 취했다. 아침일찍 잠이깬 황교장은 참으로 오랫만에 우장산을 찿았다. 낯익은 몇사람들과 눈인사도 나누며 숲길을 걸었다. 상쾌한 아침공기로 코끝이 시원했다. 우장산 정상에서(얕으막한산이지만) 강서구 일대를 내려다 보았다. 세상은 질서있게 잘 돌아가고 있는듯 보였다. 황교장자신만 엉거주춤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것 같았다. 2000년11윌22일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에서 황교장은 이미 숨을 거둔 아내를 넋놓고 보고 있었다. 아내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누워 있었고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하얘지고 텅 비어가고 있었다. "않돼!" "아니야 꿈일거야".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난후 그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허망하다고 해야할지 억울하다고 해야할지 , 믿기지 않고 막막하여 슬픈줄도 몰랐다. 헤어질 준비도없이 한마디 당부의 인사도 없이 아내는 가버렸고 그는 매일이 악몽을 꾸고 있는것 같았다.

말레이시아에서 한식당을 하는 아들과 그곳에서 한국 화장품 총판대리점을 하는 딸은 황급히 와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생활터전으로 돌아갔다.

자식들이 돌아간후 황교장은 어떻게 지냈는지, 정신이 없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허둥 대는 동안도 세월은 흘렀다.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보았지만 매일매일이 너무나 낯설다. ㄱ 그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큰소리치며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황교장은 간곳 없고 아무런 엄두도 못내고 매사에

갈팡질팡하는 늙은남자의 모습만 남았다. 자식들도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고, 그도 정년퇴직을 했으니 노년으로 접어들었구나 생각은 했었다. 언젠가는 그도, 아내도 이세상을 떠나겠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그러나 그렇게 갑자기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날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내없이 사는 세월은 난간없는 고층건물 계단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잔소리도 그립고, 티격태격 다투며 신경전을 벌이던때도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함께 살아가는 묘미였음을 깨달았다.


우장산을 내려와 근처 해장국 집에서 식사를 고 모텔로 돌아온 황교장은 옷을 갈아입고 아내가 있는

벽제 납골당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가 행주대교를 지나자 잔잔한 한강의 풍경이 먹먹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경관좋고 아늑한곳에 자리한 납골당은 한적했다. "여보 나 왔어" 항교장은 옆사람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있으니 편해? 당신한테 살뜰한 남편 되어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골탕먹이는거야? 늙은 홀애비 되면 않된다고 나보고 먼저 가라더니,이건 약속 위반이잖아 이사람아" 황교장은 투정하는 어린애처럼 마구 중얼거렸다. 사진속 아내는 웃고만 있었다. 아내가 이렇게 미인 이었던가? 황교장은 아내의 사진을 꺼내 안아 보았다. "무정한 사람" 그의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뻐근한 가슴을 안은채 황교장은 납골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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