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여동생의 전화다."오빠, 오늘 우리집에서 점심먹어요".
여동생은 집에서 오빠와 점심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매제와 사별한 여동생은 맞벌이하는 아들네와 아파트 같은동에 살고 있다.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손자들 간식을 챙기고
학원갈 준비를 도와준다. 황교장은 외출준비를 하고 11시쯤 모텔을 나서 여동생이 살고있는 목동아파트로 향했다. 마트에 들러 한우 등심을 몇근 샀다.
마트에는 배추와 무, 대파며 갓등이 쌓여 있었다. 김장철인가 보다.
아내도 생전에 김장철이 되면 배추김치며 총각김치, 동치미를 담갔다. 팔을 걷어 부치고 분주하게 김장준비를 하는 아내는 항상 쾌활하고 바지런했다.
김치속을 준비하는 아내의 팔뚝은 희고 통통하며 매끈 했다. 아내는 김장하는날 돼지고기를 삶았다. 잘 절여진 배추에 수육을놓고 김치속을 얹어 쌈을싼뒤 황교장의 볼이 터지도록 넣어주었다. 그러면 황교장은 배추잎에 김치속을 얹고 싱싱한 굴을올려 쌈을 싼뒤 아내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렇게 맛있는 보쌈과 막걸리로 김장 뒤풀이를 하곤 했었다.
등심을사고 계산을 마친후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던 황교장은 손자들을 위해 단지내에 있는 B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도 한통 담았다.
어머니의 손맛을 닮은 여동생 은 항교장이 좋아하는 겉절이를 무치고 황태구이에 육전, 잡채까지 준비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언제 다 준비 했는지, 황교장은 여동생의 마음씀에서 남매의 정을 느끼며 코끝이 찡했다. 황교장이 식탁에 앉자 따끈하게 데운 된장찌개가 올려지고 오랫만에 남매의 정겨운
식사가 시작됐다
동생은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챙겨주고 학원준비만 시켜주기로 약속했으나, 남매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저녁때가되고, 저녁에 아들내외가 아이들을 데리러 오다보니 자연스레 아들가족 저녁을 맡게 됐다고한다.
매일 반찬준비를 하며 절로 시간에 매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몸도 전같지 않아 여기저기 불편할때도 있으나 노인네 엄살에 생색내기로 들릴가 싶어 말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지내왔으나 앞으로 내몸이 내뜻대로 음직이지않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다 갔으면 하는 바램밖에 없다고 한다.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걱정이자 희망사항 일것이다.
동생집에서 돌아온날 친구 한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편리한 시간에 그의 집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한수부부는 같은과 커플로 부부가 모두 학교때 친구인 셈이다. 다시
연락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은 떠나는 늦가을자락을 적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진 모텔방이 음산해 보인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봤다. 황금빛 은행잎은 비바람에 떨어져 푹젖은채 맥을 못추고 있었다. 잎이 떨어져 볼품 없어진 은행나무가 쓸쓸해 보였다.
기분 때문인지, 날씨때문인지, 황교장은 오한이 느껴졌다. 시장도 했으나 비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러 나가기도 그렇다. 다시 누웠다.
아내는 황교장이 감기라도 걸리면 시원한 대구맑은탕을 끓였다. 향긋한 쑥갓을 넣고 끓인 대구탕 국물의 시원함과 고추냉 이에 찍어먹던 대구살의 부드러운맛이 생각났다. 몸은 점점 잦아드는듯 전신이 무거웠다.
비가 주춤해지자 기운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황교장은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 입맛이 없다.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니 머리속이 어지럽다. 매일아침 아들네 식구들과 국적불명의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엔 인도네시아 가사도우미가 차려주는 점심이라도 얻어 먹는게 지금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들었다.
해장국을 먹는둥 마는둥 수저를 놓고 해장국집을 나섰다. 모텔로 돌아 가는길에 약국에 들러 쌍화탕을 몇병 사고 빵과 우유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