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들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모가 휴가를 받아 포르투갈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순례길이 있는데 그 루트를 걸었다고 했다.
이모는 그 순례길의 여정에서 이틀 만에 발톱이 빠졌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순례길을 완주하지 못해 약간 우울하다고 했다.
하루에 배낭을 메고 30km를 걷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나는 2017년도 늦가을에 산티아고를 걸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가 '산티아고'라고 말하면
"거긴 칠레의 수도 아니냐?"
"여기선 콤포스텔라라고 부른다."
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15kg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매일같이 30km 이상을 걸었다.
그렇게 꼬박 35일을 걸었다.
콤포스텔라를 넘어 스페인의 서쪽 땅끝 마을인 묵시아 까지 갔으니
당시의 체력은 거의 마블 히어로쯤 되었던 거 같다.
그때의 나는 상당히 잘 걸어 다녔다.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이도 30대 중반이었는데,
심지어 당시엔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시절이다.
그런 저질체력 수준으로 1000km를 걸었다는 건 기적이었다.
난 어떤 생각으로 그 길을 걸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추해보니 매일같이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곱씹으며 걸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영문을 모르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는데,
걷다가 힘들어서 너무 지칠 때마다
'이 딴 거에 지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거 같다'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멋진 풍경들을 시야에 담은 채 여태껏 내가 살아왔던 과정들을
떠올리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았다.
결국 순례길 끝자락에서 내가 찾은 해답은
비관과 자조뿐이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자책이 원동력이 되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귀국하고 사실상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순례길을 걷고 오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나에게는 괄목할만한 성장이나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시간부터 나에 대해서 알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자세하게 들여다 본 경험이 전무했던 시절에 시작한 순례길의 여정은
그냥 여행이 아닌 나를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래서 인생 통틀어 가장 값진 경험을 안겨준 여행으로 기억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너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봤느냐고 꼭 물어본다.
근데 웃긴 건 열에 아홉은 낯부끄럽게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핀잔을 준다.
자신을 알아가는 게 창피한 일이던가?
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그러니 인생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일은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그런 값진 시간을 꼭 경험해 보라고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