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대하여

상실의 편린들

by 보림월

예전에는 일주일에 3번씩 손톱을 깎았다.

손가락 끝의 피부와 약간 자란 손톱 사이에 틈이 생기는 꼴을 보지 못했다.

조금씩 자라나는 손톱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함께 자라나는 것 같아 침울해지곤 했다.

나는 이런 사유로 손톱에게 자랄 틈을 주지 않았다.


A는 이런 내 손톱을 좋아했다.

"오빠 손톱은 매번 볼 때마다 깔끔하고 잘 정돈돼있어서 좋아."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 손톱을 빗대어 나의 청결함을 칭찬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와 이별하던 날

"이제 더 이상 오빠의 여자가 하기 싫어. 미안해.."

라는 말을 남기며 A는 차갑게 뒤돌아섰다.


그 뒤로 가끔 나의 손을 볼 때면

날카로운 상실감을 껴안은 채 자라나는 손톱만큼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그리움에 서글퍼지곤 했다.

일상에 치여서 손톱 자르는 걸 잊어버려 길어진 손톱을 마주할 때면

그때의 서글픔이 나를 집어삼킬까 봐, 얼른 손톱깎기를 찾았다.

이별이 준 상처는 한번뿐이었지만,

A가 남기고 떠난 상실의 편린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상흔으로 남겨졌다.


그 뒤로 가끔 손톱을 깎은 뒤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손톱의 잔해들을 보면 A가 생각났다.

내 손에 붙어있는 손톱이 아닌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버리려는 무용한 것들에서 그녀가 떠오른다는 사실은

그만큼의 시간이 나의 상흔을 세월 속으로 데려갔다는 방증이었다.

그렇게 상실이 남긴 조각들은 시간이 흘러 점점 내 주변에서 멀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짧은 손톱을 유지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냥 내버려 둘 때도 있다.

매일같이 자라나던 그리움이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자주 손톱을 자를지도 모르겠다.

추억이라는 품 안에 끊임없이 나를 의탁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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