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입가에 미세하게 잡힌 주름 탓인지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문상객들은 그런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편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엷은 미소 너머에 숨겨진 쓸쓸함이 먼저 보였다. 그 쓸쓸함은 내가 여태 아버지의 눈빛에서 읽어내지 못한 것이었고 아버지의 죽음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알려준 감정이었다. 과거에 아버지의 뺨을 내리쳤던 둘째 큰아버지는 빈소를 찾지 않았다. 그 대신에 사촌형이 찾아와 조문을 했다. 발인하기 전 날이었다. 어머니는 주무시는지 상주 휴게실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고 동생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를 맞이하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사촌형의 머리는 군데군데 흰머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둘째 큰아버지가 직접 찾아왔다면 모든 일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피가 섞여 있다 해도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에게 친절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촌형은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한 잔 마시고는 내 앞에 놓인 컵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사촌형은 아버지의 사인을 직접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내막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그래야겠죠.>
<막내 작은 아버지의 부고를 아버지에게 알려드렸다. 근데 발을 붙이고 싶지는 않으신 것 같아서 내가 대신 왔다. 아버지가 이걸 전해주라고 했다.>
사촌형은 자신의 양복 안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내 앞으로 밀었다. 그 안에는 더께 같은 감정들이 수북이 쌓여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전해주신 조의금이다. 얼마인지 세어보지는 않았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나.>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곳에 못 오셔서 미안한 건지 동생의 죽음에 조의금을 부족하게 해서 미안한 건지 나는 알 턱이 없지만 아무튼 미안하다고 전해달라 하더구나. 뭐가 됐든 다 미안하시겠지.>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그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돌아가기 위해 구두를 신는 사촌형의 등뒤에서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대요. 사각사각. 귀에서 사포질 하는 소리 같은 게요. 뭘 도려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소리였을까요?>
<글쎄다. 뭔가가 닳아져 가는 소리 아닐까? 마모되어 간다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마모요?>
<그래. 너도 나이를 먹다 보면 알게 될 거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네 안에 무엇이 조금씩 닳아서 사라져 가는 거거든.>
<그게 뭘까요?>
<뭐, 욕망 같은 거 아닐까. 욕망을 쫓는 게 인간이니까.>
<근데 욕망도 닳아서 사라지나 봐요.>
<살다 보면 외부의 힘이나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해야 되는 상황들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그걸 포기함으로써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걸 지킬 수 있는 거고.>
<슬픈 일이네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포기함으로써 지탱이 되고 유지가 된다면 그만큼 편안한 것도 없거든.>
<그렇군요.>
<중요한 건 닳고 있는 게 뭔지 일찍 알아차리는 거야. 닳아서 없어질 거라면 그걸 먼저 포기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야 남들보다 편안함을 빨리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어렵네요.>
<너는 잘할 수 있을 거다. 작은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배웅을 하기 위해 내가 신발을 신자 사촌형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빈소로 돌아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이마에 칼로 그어놓은 흉터 같은 주름을 보며 그의 귓속에서 마지막까지 울렸을 소리들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귓속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하고 불쾌한 소리에 평생 시달려왔을 것이다. 사각사각. 그것은 자신의 욕망의 모서리가 닳던 소리였고 형태를 잃어 소멸되어 가는 소리였다. 내가 아버지의 눈빛에서 읽어내지 못한 감정은 쓸쓸함일 것이다. 서서히 소멸되는 자신의 욕망을 지켜보는 기분은 편안함보다는 쓸쓸함에 더 가까울 것이다. 붉게 충혈된 아버지의 눈동자를 떠올렸지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기묘한 감정이었다. 슬픔이 아닌 게 분명했다. 좌절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 익숙한 섬뜩함이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 입가에 미세한 주름과 이마에 칼자국 같은 선명한 주름. 그리고 사촌형의 한마디. 너는 작은 아버지를 닮았어. 순간 그의 한마디가 귓전을 울리며 나를 숨 막히는 공포로 밀어붙였다. 그 서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내 마음에 닿는 순간 나는 깊은 절망 속으로 아찔하게 떨어져 내렸다. 나에게 새겨진 유전자.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싫어하지만 나에게도 있는 것. 결코 내가 버릴 수 없는 것. 벗어날 수도 출구조차 없는 유전자. 체념을 유발하는 두려움. 어쩌면 인간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닮아간다는 공포가 아닐까. 그날 나는 오래도록 빈소에 앉아 손 끝으로 이마를 더듬었다. 꿈과 욕망이 거세된 뒤에 남은 자국. 아버지의 이마에 새겨진 흉터 같은 주름이 나에게서도 만져지는 것 같았다.
8.
차갑게 굳어버린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문 밖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운 소리에서 전 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서였다. 배관기사가 장비를 정리하는 소리와 어머니가 집안의 세간을 정리하는 소리가 겹쳐지면서 밖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러다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섞여 들렸다. 나는 그 발소리가 분명히 전 씨 아저씨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닫힌 방문을 열고 차갑고 어두운 좁은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희망이 부풀어올라 천장을 뚫기 전에 배관기사의 목소리가 김을 빼주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둘째 아드님 오셨나 봐요.>
어머니의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집안을 울려댔다.
<으응. 둘째네 왔구나.>
<네. 잘 지내셨어요? 그나저나 집이 왜 이렇게 어수선한 거예요?>
<응. 배관이 막혀서 세척하고 새 걸로 교체했다. 여기 젊은 양반이 혼자서 다했다. 고생했어요.>
<고생은요. 금방 해결했는데요 뭐. 그나저나 방 안에 계신 아드님이 얼른 나오셔야 될 텐데요.>
<방에 누가 있어요?>
<응, 느이 형이 안에 갇혔다. 안에서 손잡이가 부서졌지 뭐냐. 그래서 안 열린다.>
<어디. 엌. 엄마. 이거 사람 불러야겠는데요. 형. 나왔어.>
<어휴. 아주버님. 괜찮으신 거예요?>
<얼간이처럼 왜 그런데 갇힌 거야. 형도 참.>
<걱정 마라. 전 씨 아저씨가 와서 열어준다고 했다. 곧 올 거다.>
<그럼 다행이네요. 아주버님.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는 건 단지 추위와 굶주림에 몸이 굳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오랜 시간 나를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도움을 청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서 기인한 무력감이 내 신경과 세포 사이사이에 빈틈없이 스며들어 유독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그 특별한 화학작용에 마취된 나는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방에 누워 병들어 가는 사람처럼 이른 시취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고생했어요.>
배관기사는 모든 작업을 마친 것이다. 나는 이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얼굴도, 배관기사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문 틈으로 그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동생과 재수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을 열어준다는 전 씨 아저씨는 언제쯤 오는 걸까. 오기는 오는 걸까. 배관기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드님.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이유는 무슨 이유. 지가 잘못해서 문이 잠긴 걸 어떡해.>
<형. 걱정 마. 정 안되면 내가 문을 부수면되지 그까짓 거 일도 아니지.>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 끝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배관기사가 현관을 나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다 서서히 옅어진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발소리가 남긴 여운을 느끼려고 했다. 소리는 흩어지지 않고 집 안 어느 한 구석에 고여있는 것 같았다. 얼마뒤 여러 사람들이 식탁으로 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어머님. 김치를 너무 맛있게 담그신 거 같아요.>
<느이 주려고 내가 하루 종일 담았다. 민어탕도 하루 종일 끓여서 맛이 좋을 거다.>
문 밖에서 저녁 먹는 소리가 들려온다. 뜨거운 국물이 입천장에 닿는 소리. 젓가락과 숟가락이 번갈아가며 내는 소리. 밥알 씹는 소리. 식구들의 웃음소리. 그 소리들은 나를 사로잡으며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어딘가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고압호스의 모터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저녁을 먹은 뒤 어머니가 사과를 깎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가, 내 안에서 들었던 무언가 도려내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눈을 감자 어둠은 여분의 어둠을 모조리 긁어내 내 눈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농밀한 어둠이 드리워지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게 만든 건 살짝 열린 문틈에서 들어오는 형광등 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벌어진 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어색한 공기에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머리는 검은 물이 가득 찬 것처럼 무거웠고 추위로 굳어진 몸은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이 열려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내가 잠든 사이 전 씨 아저씨가 다녀간 게 틀림없었다. 힘겹게 걸어서 거실로 나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식탁 위에 올려진 빈 그릇들이었다. 음식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릇들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큰 냄비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뚜껑을 덮어놓은 상태여서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창문과 방문은 변함없이 발치를 앞둔 입처럼 모두 열려있었고 남루한 세간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쿨럭이는 소리가 났다. 내 시선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싱크대 쪽을 향했다. 마음을 졸이며 배수구 안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 시커먼 구멍은 나와 시선을 마주쳐서 놀랐다는 듯이 물을 뿜어댔다. 창 밖에서 고압호스의 모터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