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되지 않는 밤 #3

by 김로윤

5.

고압호스의 모터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려댔다. 막힌 지점을 작업할 때는 맹렬한 굉음 내다가 이물질이 없는 비어있는 지점을 통과할 때에는 허공에 못을 박는 것처럼 공허한 소리를 냈다. 내 귀는 어느덧 이 소음에 적응을 한 모양이다. 맹렬한 소리가 들릴 때면 내 속에서도 꽉 막힌 무언가가 세척되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쾌감이 밀려왔고 텅 빈 공허한 소리가 들릴 때면 깨끗이 세척되어 정화되었다는 사실에 평온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소음은 더 이상 청각을 고문하지 않았다. 소음은 실제로 내 세포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경색된 내 신경 하나하나를 세척해 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냉기와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굉음이 내 몸속 깊숙한 어딘가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막혔었던 울음이 출구를 찾자 다시는 밑바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듯이 악다구니 치며 솟구치는 것처럼. 육체가 만들어내는 기괴한 굉음이라고 생각하니 내 안에 은닉되었던 삶의 어느 한 조각이 아슴아슴 기억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파편화된 기억들이 늘 그렇듯 색채가 없이 희미할 뿐 뚜렷한 정보를 주진 못했다. 어느덧 모터소리가 잦아들면서 문 틈으로 배관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사님.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베란다 쪽 배수구를 확인해 볼게요.>

<다 됐어요? 근데 베란다는 왜?>

<이 집 배관이 참 특이한 게 집 전체를 빙 둘러놨어요. 여기 싱크대에서 시작해서요. 여기 화장실 지나고요, 안방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베란다 배수구가 개인배관 마지막 지점이에요. 여기 통과해서 이 아래에 공용배관으로 흘러들어 가게끔 설계해 놨어요.>

<배관이 그렇게 길어요? 나는 여기 부엌 창가 바깥쪽에 달린 배관이 우리 집 건 줄 알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바깥에 공용배관 연결된 거 확인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여기 집 지을 때 무슨 의도로 이렇게 작업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큰 이상은 없어요.>

<우리 집 배관만 이렇게 베베 꼬아놓은 건가. 참으로 희한해. 오래된 집이라 별난 게 많어.>

<걱정 마세요. 집 지을 때 다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설계했을 거예요. 배관만 주기적으로 세척하시면 큰 문제는 안 생길 거예요.>

문 밖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작업이 거의 다 끝났다는 사내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작업의 종료를 암시하는 사내의 말에 안심한 것이 아니라 이 오래된 집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사내의 말이 나를 더 안심시킨 건지도 모른다. 메마른 내 입술이 문틈으로 향했다.

<저기. 이제 다 끝났나요?>

<네. 거의 끝나가요. 그나저나 거기서 빨리 나오셔야 될 텐데.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아요.>

<금방 나오실 수 있을 거예요. 나오셔서 가족분들이랑 저녁 드셔야죠.>

<네. 그래야죠.>

<기사양반. 이제 이 모터소리 한 번만 더 들으면 되나?>

<네. 마지막이에요. 너무 시끄럽죠? 웅덩이에 빠진 자동차 바퀴가 헛도는 것처럼 끝날 기미가 안보이잖아요.>

<으응. 맞아. 나는 아까부터 계속 이것만 들여다보고 있었어. 언제 끝나나 하고.>

<모든 일에는 그래도 끝이 있기 마련이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사내의 한마디가 파편화되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귀전에서는 고압호스의 모터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마모되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웅덩이에 빠져 헛돌고 있는 오래된 자동차의 엔진음이었다. 그날 검은 하늘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소리도 없이 어둠을 찢어 놓는 낙뢰가 듬성듬성 이어지는 여름밤에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벽까지 뜬 눈이었다.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아련하게 들려왔지만 나를 잠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불안했던 탓일까. 새벽까지 귀가하지 않던 아버지의 발걸음을. 아니면 들떠있었던 걸까. 아버지가 바빠서 늦는다는 것은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걸 뜻하니까. 나는 바람을 타고 어둠을 어루만지는 빗방울들의 은밀한 선율을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연둣빛으로 발광하는 폴더폰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가 사주신 것이었다. 눈을 떴을 때 사위는 어김없이 어두웠고 비는 더욱 맹렬하게 퍼붓고 있었다. 머리맡에서 쉴 새 없이 진동하는 폴더폰을 집어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응. 지금 요 앞 저수지로 나올 수 있냐? 어두우니 손전등을 챙겨야 한다.>

<저수지요?>

<그래. 차가 웅덩이에 빠졌는데 네가 와서 좀 밀어줘야겠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신발장에서 빨간색 손전등과 장우산을 손에 쥐고 문을 나섰다.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오니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얇은 여름옷을 찢어놓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100미터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우산은 몇 번이고 뒤집어지면서 속살을 내비쳤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고무 슬리퍼의 뒤축이 흙탕물을 튀어 오르게 하는 바람에 발은 물론 뒷 허벅지까지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버지를 만나기도 전에 온몸이 비바람과 흙탕물에 젖어 비 맞은 날짐승의 꼴이었다. 그렇게 어둠 속을 헤집고 걷다 보니 멀리 아버지의 택시가 보였다. 그곳은 늘 아버지가 택시를 주차해 놓는 곳이었는데 시청에서 생태 공원을 형성하기로 예정된 저수지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저수지는 아직 공사 전이라 가끔 낚시꾼들이 들락거렸고 인적은 거의 없었다. 가뜩이나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당연히 폭우를 견딜만한 지반은 아니었다. 저수지 근처는 모두 진창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는 마땅히 차를 댈 곳이 없어 늘 그곳에 주차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폭우 때문에 더 물러진 땅은 택시의 타이어가 닿자마자 웅덩이를 파놓았고 아버지는 스스로 파놓은 웅덩이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아버지의 하늘색 셔츠에도 온통 흙탕물이었다. 당신이 이미 손을 써보았지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응. 별거 아니다. 내가 신호를 주면 여기에 손을 대고 힘껏 밀거라. 비를 맞으니 한 손으로 우산을 잡고 한 손으로 밀면 될 거다. 손전등은 요 위에 두거라.>

아버지는 나를 트렁크 앞에 세워두고는 운전석에 탄 뒤 창문을 열어 손을 뻗었다. 잠시 후에 아버지의 손이 허공에서 흔들렸고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차를 밀었다. 차는 미친 듯이 진동하며 폭발할 것처럼 울었지만 헛바퀴만 돌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발아래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저수지의 비릿한 냄새와 섞여 산패한 기름 냄새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이지만 엷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 이마에 몇 가닥의 주름이 그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은 오래된 수술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했고 날카로운 칼로 난자한 흉터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 주름이 너무나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였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남겨놓은 자국처럼.

<한번 더 해보자.>

<네.>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온몸의 힘을 손 끝으로 모아서 있는 힘껏 차를 밀었다. 차가운 진흙 속으로 발이 빠져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비바람이 머리부터 발끌까지 적시는 걸 느끼면서. 매캐한 매연이 코 속으로 스며드는 걸 느끼면서. 자신의 형에게 젊음과 청춘을 바쳤던 아버지의 사라져 버린 꿈과 욕망을 느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울분에 휩싸여 이를 악물고 차를 밀었다. 피가 쏠려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라 턱 끝이 떨릴 때쯤 부아앙하는 거친 배기음과 함께 아버지의 차가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가 기뻐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차에서 내린 아버지의 입가에는 잔주름조차 없었다. 당신은 습한 어둠 속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고생했다. 이제 들어가서 씻고 자거라.>

<네.>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등지고 뒤돌아섰을 때 당신의 뒷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뒤통수와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 것을. 그것은 폭력의 흔적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택시 영업을 하면서 취객들이나 난폭한 승객에게 느닷없는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목덜미에 벌겋게 찍힌 소인 消印 은 대도시의 익명성에 길들여진 방향을 잃은 적의가 찍어놓는다는 것을. 길의 소실점을 향해 아버지의 택시가 나아갔다. 빈차 표시등의 노란 불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보면서 저 작은 빛은 원래 어둠에 속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사실이길 바랐다. 너무나 빨리 어둠 속으로 용해되어 버렸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이마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그어진 주름 같은 것이 있을까 하고. 손 끝에 느껴지는 건 없었다. 어쩌면 그 움푹한 자국은 꿈과 욕망이 거세된 자국일지도 모른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귓가에 다시 한번 고압호스의 모터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는 말했다. 모든 건 끝나기 마련이라고 그러나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6.

희부윰한 달빛이 커다란 손이 되어 온몸을 어루만졌지만 벽 속에 깊게 스며든 냉기를 달래주지는 못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의 온기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희미하게 식어갔고 그 어둠에 희석되어 푸르게 변해갔다. 냉혹한 겨울의 밤은 차가운 달빛을 더욱더 차갑게 만들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더 이상 앉아있을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짙어지는 어둠, 사그라들지 않는 냉기, 되풀이되는 소음. 그리고 불편한 기억들이 뼛속에 남아있는 기력마저 모두 앗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은 냉골에 모로 몸을 뉘었다. 그러고 있자니 차가운 늪속으로 영원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모멸의 속성을 가진 자멸의 늪. 문을 열어준다는 전 씨 아저씨는 오기는 오는 걸까. 아까부터 온다고 했건만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체념이 내 몸을 결박이라도 한 듯 나는 손 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배관 세척 작업의 종료를 일러주듯이 고압 호스의 모터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소음이 완벽하게 사라지자 배관기사가 말했다.

<자, 세척 작업은 다 끝났습니다.>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친 사람의 목소리에는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내일을 향한 헛된 기대가 어느 정도 섞여있는 어조에서 막연한 낙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낸 오늘 하루가 공연한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축하는 세리머니였고 자기도취 전에 치르는 의식일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 성대에서는 울리지 않았을 소리였고 평생 내 주변에 떠돌지 않았을 소리였다.

<아이고, 고생했어요. 그럼 이제 물 실컷 써도 되는 거예요?>

<네. 이제 잘 내려갈 거예요.>

<다행이네. 저녁밥 먹기 전에 고쳐서. 이제 값을 치러야지. 계좌이체 해줄게요.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스마트폰을 아주 스마트하게 잘 쓴다구.>

<아, 그전에 싱크대 배수구 교체해 드릴게요. 아드님이 손댔다가 끊어진 거 말이에요.>

<으응, 그렇지. 서비스받아야지. 히히.>

문 밖에서는 모터소리가 아닌 무언가를 뜯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싱크대 배수구일 것이다. 아까 손을 댔을 때 세월의 흔적이 보였으나 마모된 흔적 없이 튼튼해 보였다.

<그런데 아버님은 안 계시나 봐요. 보통은 아버님들이 배관 설계 같은 거 궁금해하시거든요. 질문도 많이 하시고요.>

<으응, 죽었어.>

<어휴, 어쩌다가.>

<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지 뭐야.>

<이 건물 옥상에서요?>

<으응, 귀에 자꾸 무슨 소리가 들린대서 병원도 다녀보고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갑자기 옥상에 올라가더니만 뛰어내렸지 뭐야.>

<저런. 꽤나 상심하셨겠어요.>

<궁색하게 산 사람은 죽은 뒤에도 궁색하더라고. 이 빌라가 이렇게 낡았어도 층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옥상에 올라가는 게 다 찍힌 거야. 자살로 판명돼서 보험금도 한 푼 못 받았어.>

<하자가 있네요.>

사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얼어붙었는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몹쓸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말문이 막혔다.

<하자가 있어요. 배수구에.>

<으응, 집이 오래돼서 그렇지 뭐.>

<어휴. 온통 하자네요. 이런 불량품을 어떻게 끼워둔 건지 참.>

문 틈으로 찢어질 듯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무언가가 분리되어 해체되면서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이윽고 툭. 남아있는 거라곤 거친 절단면만 가진, 속이 텅 비어있는 가벼운 것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의 아버지의 단말마처럼. 당신의 입 속에서 마지막으로 새어 나온 소리도 이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소리였을까. 그날 부엌에 엉거주춤 서 있던 아버지의 몸짓은 띄엄띄엄 이어졌다. 당신의 움직임이 고장 난 태엽인형처럼 뚝뚝 끊길 수밖에 없었던 건 손에 들고 있던 투명한 유리병이 미끄러운 탓이라기보다 귓속에 연신 기름을 들이부었는데도 불구하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불규칙하고 불쾌한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모로 꺾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아버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었다.

<귀에 벌레가 들어갔지 뭐냐. 그래서 식용유를 넣으면 이 녀석이 알아서 기어 나올 게다.>

<제가 한번 볼게요.>

나는 휴대전화의 손전등을 비추어 아버지의 귀를 확인했다. 귓구멍 속은 귀지도 없을뿐더러 매끄럽고 깨끗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어머니가 희한하다는 듯이 말했다.

<느이 아버지 귀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린단다. 귓속에 벌레가 들어가서 기어 다니면 그런 소리가 난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너 오기 전에 내가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귀지도 말끔하게 파내고 식용유도 몇 숟가락 넣어봤다. 그런데 벌레는커녕 살비듬 한 톨도 안 나오더라.>

그날 아버지는 저녁을 먹는 식탁에서 몇 번 두리번거리다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빼빠를 미는 거냐?>

<빼빠요? 아, 사포질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빼빠말이다. 사각사각. 슥슥.>

<그럴 리가요. 이 밤에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

<이상하구나. 누군가 계속 빼빠를 밀어대는 거 같다.>

아버지는 또다시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밥공기에 절반쯤 남아 있는 밥을 단번에 먹어치웠다. 열심히 저작운동을 하는 네모난 턱에는 몇 개의 밥풀떼기가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가에 붙어있는 밥알을 떼어주면서 그의 눈빛을 읽어내려 했다. 약간은 붉어진. 여전히 습기를 머금고 있는. 무거운 것을 버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당신의 눈동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눈빛에서 겨우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는 헛된 희망과 어리석은 기대뿐이었다. 다음번에 아버지를 만난다면 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눈빛을 볼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과일 껍데기를 깎아내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온 건 비일상적인 공기가 집안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귓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그 불규칙하고 불쾌한 소리가 나에게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망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접시 위에 단정하게 놓인 사과를 한 조각도 입에 넣지 않았다. 우리는 보이진 않지만 들려오는. 들려오다가 멀어지는 소리들을 떨쳐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어머니의 입 속에서 사과 씹히는 소리가 그 소리들과 한데 뒤섞여 아련하게 들려왔다. 티브이에서는 제목이 뭔지도 모르는 가족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고 좁은 거실에서는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똑. 하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렸다. 그날 밤 잠결에 들었던 쿵하는 소리는 분명히 높은 곳에서 육중한 것이 떨어져 지면에 닿았을 때 나는 소리였다. 무언가가 낙하하는 소리였지만 거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겉이 아닌 속에서 터지는 파열음. 깨지지 않는 소리. 파편화되지 못한 소리. 숨이 붙어 있는 것.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차갑게 비추는 가로등 아래에 널브러진 밤색 구두는 아버지가 신던 것이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은 건 바닥에 누워있는 한 남자의 육체 때문이 아니라 뒤늦게 알아차린 나의 무지에 대한 섬뜩함이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엎드려 있는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비로소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아닌 차갑게 식어가는 당신의 등에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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