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되지 않는 밤 #2

by 김로윤

3.

배관을 휩쓸고 있는 고압호스의 모터소리는 집안을 삼키려는 듯 웅장한 굉음을 만들어냈다. 좁은 창으로 비추는 차가운 달빛이 억눌린 듯 날이 선 공기를 만들었고 그것은 방 안을 둘러싼 어둠과 합세해 더 짙은 냉기로 피부에 스며들었다. 형광등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눌렀지만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머니. 여기 불이 안 들어와요.>

<응. 전구가 나갔을 거다.>

<그럼 보일러 좀 켜주세요. 방바닥이 너무 차가워요.>

<그 방은 보일러 파이프가 오래돼서 그런지 불이 안 들어간다. 난 그 방을 안 쓰니까 고치지도 않았지 뭐냐.>

<전 씨 아저씨는 언제 도착한대요?>

<글쎄다. 아까 30분이라고 했는데 내가 다시 전화해 보마.>

<네.>

<아드님. 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혹시 방 안에서 하수구 냄새는 안나죠?>

<네.>

<금방 끝날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사내의 쿵쿵거리는 발소리는 끊임없이 벽을 타고 전해졌고 소리는 그가 수선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것을 짐작케 했다. 주말 저녁에 방문한 배관기사가 청구하는 비용이 터무니없을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물었다.

<참, 근데 비용이 얼마예요?>

<어머님네 개인배관만 고압으로 세척한다면 50만 원이고요. 공용배관까지 작업하면 120만 원이에요. 근데 공용배관 작업을 해야 한다면 이건 어머님만 부담하실게 아니라 여기 빌라 사는 사람들이 각자 분담해서 내시는 게 맞을 거예요. 왜냐하면 공용배관은 건물사람들이 다 같이 쓰는 거니까요.>

<내시경으로 들여다봤는데 어디가 안 좋아서 공사를 해야 될 수도 있어요?>

<동파가 돼서 배관이 터졌으면 공사를 해야죠. 그건 바닥 다 뜯어내야 돼서 1200만 원이에요. 근데 이렇게 미세하게 역류하는 거면 동파는 아닐 거예요.>

<그럼 다행이네. 금방 되는 거죠?>

<네. 일단 여기 배수구랑 연결된 개인 배관 세척하고요. 그 후에 공용배관 상태를 점검해 봐야 될 거 같아요.>

<근데 이거 하면 돈 많이 벌어요? 한 달에 얼마나 버나?>

<많이 버는 달에는 800만 원 정도요.>

<어휴. 많이 버네. 우리 아들도 이런 거 하면 좋을 텐데.>

<아드님은 직업이 뭐예요?>

<응, 취업하다가 때려치우고 지금은 물류센터. 야간.>

<야간 물류센터면 힘드시겠네.>

<이거 보다 힘든가?>

<저보다 힘들죠. 그래도 아드님 덕분에 사람들이 집에서 편하게 택배 받을 수 있잖아요.>

<결혼은 했수?>

<아니요. 아직. 아드님은요?>

<쟤도 아직. 작은 아들만 장가갔지.>

<그래도 둘 중 한 명은 갔네요.>

<장남이 자기 앞가림을 못해서 속이 타지. 아직도 빛이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없으시대요?>

<없어. 쟤는 그런 거. 사내놈이 야망이 있어야 성공하는데. 지 애비 닮았는가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라서 여태껏 문만 두드려보다가 세월만 흘러갔지. 체념이지 뭐. 겨우 자기 밥값만 하는 거 같어.>

<운동을 시켜보시지 그랬어요.>

<운동시켰지. 태권도. 한동안 잘 다니다가 왜 포기했는지. 어느 날부터 도장에 안 나가더라고.>

<가만히 보니까 어딘가 어긋나고 삐뚤어진 거 같아요.>

나는 어긋나고 삐뚤어졌다는 사내의 말에 답하기 위해 문 틈으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아니라고. 나는 어긋나고 삐뚤어진 사람이 아니라고. 내 음성이 오차 없이 전달되도록 더 많이 벌어진 틈을 찾고 있을 때 사내가 덧붙였다.

<배관이요.>

작은 방의 어둠 속으로 틈입했던 어머니와 사내의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익숙한 사실들을 거리낌 없이 수용했다. 어쩌면 어긋나고 삐뚤어진 사람일수록 수용에 익숙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수용에 익숙한 체질이 어긋나고 삐뚤어질 확률이 높은 걸지도.

어머니의 말대로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장을 열심히 다녔다. 같은 도장에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녀석이 검은띠를 메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머리통 두 개가 차이 날 정도로 키가 컸는데 큰 키를 무기 삼아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녔다. 겨루기 때는 긴 다리를 번쩍 들어 상대의 정수리를 찍어대곤 했는데 발차기를 맞은 아이들의 하얀 정수리는 우편물의 소인消印처럼 붉게 달아오르곤 했다. 나 역시 그 수치스러운 도장이 정수리에 찍히곤 했는데 더욱 수치스러운 건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녀석이 반말과 욕을 섞어가며 나를 등한시한다는 거였다. 관장님은 검은띠인 녀석을 도장의 자랑으로 여겼고 언제나 치켜세워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젠가 녀석의 코를 반드시 납작하게 눌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였던가. 내가 뒤돌려차기를 연습한 것이. 다리 찢기가 특기였던 나는 쭉쭉 찢어지는 유연한 다리로 뒤돌려차기를 연습했다. 정확하고 치명적인 타이밍을 계산해 가면서. 녀석이 다리를 올려서 내 정수리를 가격할 때 나는 잽싸게 뒤돌려차기로 녀석의 턱을 적중할 계획을 세웠다. 상상 속에서 내 뒤꿈치는 녀석의 오른쪽 턱을 몇 번이고 강타했다. 겨루기의 날. 나는 녀석의 이단 옆차기를 견뎌내며 기회를 엿보았다. 드디어. 피날레. 녀석의 오른 다리가 허공을 가를 때 나는 수백 번 연습했던 뒤돌려차기로 녀석의 턱을 정확히 조준하는 데 성공했다. 턱을 맞은 멀대 같은 녀석은 맥을 못 추고 휘청거렸다. 회심의 일격으로 옆차기를 날리려는 순간 관장이 제지했다. 그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승리의 달콤한 환희를 맛보았고 그 달콤함은 한동안 도취와 탐락을 이끌었다. 나에게 패배를 맛본 녀석은 그 뒤로 자취를 감추었고 끝내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관장의 관심은 나를 향하기 시작했고 예정되어 있던 태권도장 설립 1주년 학예회 때 송판 격파 시범자로 내가 선정이 되었다. 관장과 어린 나는 밤 10시가 넘도록 송판 격파 연습을 했다. 옆차기, 앞차기, 주먹 찌르기, 이단 옆차기, 돌려차기.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높이 차기까지. 의자를 한 번 밟고 높이 날아올라서 송판을 격파하는 높이 차기에 많은 연습량이 투입되었다. 발등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부서진 송판의 가루가 입 안을 꺼끌 거리게 만들 정도로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다. 학예회 전 날 관장은 짜장면을 사주면서 말했다.

<네가 우리 도장의 최고의 인재가 될 거다.>

학예회 날. 송판 격파의 순서가 오기 전까지 갈채와 영광 속에 우뚝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도장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기대하며 나는 빈 공간에서 끝까지 발차기 연습을 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 나는 도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너는 최고의 인재야. 너는 최고의 인재야.

의자를 밟고 날린 몸이 허공에 붕 뜨는 순간 그전에 맛보았던 도취의 감미가 내 혀에서 느껴졌다. 나는 확신했다. 송판은 내 발등에서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발등에 송판이 닿는 순간 파쇄되는 감각에서 느낄 수 없는 견고하고 단단한 감각이 발 끝을 타고 전해졌다. 송판은 부서지지 않았다. 의자 위에서 송판을 들고 있던 관장은 실없이 웃으며 재도전이라고 외쳤다.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송판은 균열하나 없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재도전. 세 번째 도전에서 송판은 부서졌지만 그것은 내가 부순 게 아니었다. 민망해진 관장이 내 발등이 닿기 전에 스스로의 악력으로 부순 것이었다. 그렇게 송판 격파가 끝났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른의 냉담한 시선과 아이들의 실망으로 가득한 눈빛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갈채와 영광은 커녕 파행이 가져다준 지탄만이 내 앞에 남겨져 있었다. 학예회가 모두 끝나고 어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굼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관장은 불량품인 송판을 제공한 업체와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혈전을 벌였다. 불이 꺼진 도장에서 나는 시퍼렇게 부어 오른 발등을 내려다보며 체념과 무력감을 학습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아니. 나는 원래 안 되는 놈이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놀이터에 외로이 매달려있는 그네에 앉았다. 양손으로 잡은 녹슨 쇠사슬이 그날따라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차가운 기운을 잊기 위해 몸을 움직여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그네는 어둠 속에서 훨훨 날아올랐다. 밤새도록 그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왜 이렇게 늦게까지 싸돌아다니냐며 어머니가 발가벗겨서 나를 내쫓았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어른들이 나에게 괜찮다며 격려나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혹시 그런 말을 누군가 해주었던 건 아닐까. 나에게 닿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개인배관이 어긋나 있어서 고압 호스가 제대로 안 들어가거든요. 공용배관 쪽으로 고압호스를 넣어볼게요.>

<집이 오래돼서 문제가 많아요. 그렇게 해요.>

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죠? 어머니는 말할 것이다. 원래 다 그런 거다. 얘야.

<어머니. 전 씨 아저씨는 언제 온대요?>

<응. 30분 정도 걸린단다.>

아까부터 30분 뒤면 도착한다는 아저씨는 오긴 하는 걸까. 나는 냉기와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로 밤새 훨훨 날아올랐을 빈 그네를 떠올렸다.


4.

고압호스의 모터소리는 어느새 달빛을 먹어치우며 어둠 위에 올라타 좁은 방 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얼어버린 아스팔트 바닥에 꽃아 넣은 고압호스는 기괴한 굉음으로 얼마나 울어대는지 나는 낡은 빌라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냉기와 소음으로 도배된 어두운 방에 비하면 문 밖의 거실은 기묘할 정도로 적막했다. 문틈으로 형광등의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지만 그것이 방안을 밝혀주진 못했다. 어둠은 빛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방은 변함없이 어두웠고 추웠다. 오히려 그 빛은 내가 바깥과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더 뚜렷하게 느끼게 해 줌과 동시에 소외감마저 들게 했다. 문틈에 매달린 하얀빛은 바깥과 어둠을 구획하는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나는 그 경계선을 넘어가지도, 밟지도 못하고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뒤 내가 소스라친 건 얼어붙은 쇠붙이가 맨살에 닿아서가 아니라 한순간에 찾아온 정적과 고요함 때문이었다. 고압호스의 굉음이 사라지자 어색한 침묵이 건물 전체에 내려앉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관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제 예상이 맞았어요. 여사님네 개인배관에서 공용배관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막혀있네요. 여기서 내려보낸 물이 공용배관으로 흘러들어 가서 빠져나가야 되는데 공용배관 입구가 막혀있으니까 가장 저층인 이 집이 역류가 됐던 거예요.>

<어머, 그러면 어떻게 해요.>

<방금 공용배관은 어느 정도 뚫어놨으니까 더 이상 역류할 일은 없을 거예요. 개인배관도 고압호스 작업 한번 하고요. 마지막으로 공용배관 한번 더 작업하면 끝날 거예요.>

<역류는 안 한다니까 다행이네. 금방 되는 거죠?>

<네. 저녁식사 전까지는 끝날 거예요. 근데 아드님은 괜찮으세요?>

사내가 별안간 나의 안부를 물었다. 마치 냉장고에 오래 보관한 식재료의 상태를 물어보는 듯한 어조였다.

<아드님. 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혹시 방 안에서 하수구 냄새는 안 나죠?>

<네.>

<금방 끝날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참으세요라는 사내의 말에 나는 내 속에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비슷한 재질이 맞닿으면서 만들어내는 마찰음이 아니고 무언가를 도려내는 소리였다. 이윽고 툭.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내 입에서 겨우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네.>

사내의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만으로 사내가 일 처리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그려졌다. 사내의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어머니가 물었다. 아니 어머니가 사내에게 물었을 때 사내의 발걸음이 멈추었을 것이다.

<근데 일 할 때 그런 옷은 좀 불편하지 않아요? 몸 쓰는 일인데 왜 깨끗하게 다려놓은 와이셔츠를 입고 오셨대.>

<아, 실은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문상을 다녀와서요.>

<누가 돌아가셨어요?>

<네.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걱정 마세요. 여기 오기 전에 소금 다 뿌렸어요.>

<총각. 그거 다 미신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구.>

<하하하. 그런가요. 근데 저기 현관 앞에 소금 담아놓으신 건 뭐예요?>

<아, 그거 잡귀 쫓는다고 신안에서 가져온 천일염 항아리에 담아놨지. 히히히.>

<하하하. 미신을 믿으시나 보네요.>

<아니 아니. 절반만 믿지. 히히히.>

어머니는 언제부터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놓으셨을까. 정화와 보호를 의미하는 소금을 현관에 두면 집안에 액운을 막아준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을까. 아님 과거에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소금을 현관에 두면 재물운이 상승한다는 부동산 업자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을까. 그것도 아님 죽은 영혼의 뜻하지 않은 칩입을 막기 위함이었을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소금 단지였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서 그 소금 단지를 보고 싶었다. 문 틈에 메마른 입술을 대고 겨우 내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어머니. 전 씨 아저씨는 언제 오신대요?>

<으응. 금방 온다고 했다. 아. 맞다. 얘. 느이 큰아버지도 돌아가셨단다. 얼마 전에 연락이 왔더구나.>

<어느 큰아버지요?>

<느이 아버지 때린 그 둘째 큰아버지 말이다.>

위잉 위잉. 고압 호스의 모터소리가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말꼬리가 금속성 기계의 난폭한 소음에게 잡아먹혔다. 그날 큰아버지의 위압에 잡아먹힌 고개 숙인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옥탑방의 작은 부엌에서 미역국이 끓었다. 허기를 깨우는 고소한 냄새는 어린 나를 마취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방이 잔뜩 낀 소고기였지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차 방정식 풀이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큰아버지 소유의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에서 기거했는데 옥탑방이라지만 방도 두 개에 거실 겸 부엌이 있고 화장실까지 있는 크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곳은 방 한 개의 작은 옥탑방을 아버지가 직접 개조해 만든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아버지로부터 받아왔다는 소고기를 솥에 모두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당시에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그러니까 아버지의 생일날이 아버지의 월급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안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아버지의 생일과 아버지의 월급날이 겹쳤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다. 내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는 모습을 힐긋하면서 수학문제를 푸는 척했다.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진 적갈색의 밥상에 두 그릇의 미역국이 올라갔을 때 벌컥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꽤나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한차례 또 폭력적인 소리가 들렸다. 짝. 소리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발신되어 나에게 전해졌다. 나에게 전달된 그 서늘한 소리는 섬뜩하고 잔혹한 폭력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책상에서 일어섰다. 방에서 몇 걸음 떨어진 거실 한복판에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곳에 내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한번 더 짝. 소리가 났다. 내가 보는 앞에서 큰아버지는 난데없이 아버지의 뺨을 내리쳤다. 아버지의 왼쪽 뺨이 뜨거운 것에 막 데인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았던 아버지의 오른쪽 뺨도 서서히 붉어졌다. 그것은 흡사 과거에 내 정수리에 새겨졌던 붉은 소인 消印처럼 보였다.

<너. 왜 내 말 안 듣냐.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넘겨준다고 했잖냐.>

<그게 벌써 5년 째에요. 형님. 형님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제 앞으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희 가족도 살아야죠. 형님 밑에서 일한 지 7년이나 됐는데 제대로 된 월급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저도 이제 번듯한 직장 다니면서 저희 가족 살 집도 장만하고 저축도 하고 자식들 대학 등록금도 내주고 그러고 살고 싶어요.>

<그래도 내가 느이 가족 여태껏 먹고살게 해주지 않았냐. 이 집도 내가 마련해 준거 아니냐.>

<이게 집입니까. 형님이 집하나 내어주신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5년을 기다렸어요. 근데 이 옥상 단칸방 주셨잖습니까. 이 좁은 곳에서 네 식구 어떻게 살까 싶어서 제 손으로 시멘트 바르고 기둥 몇 개 더 세워서 이렇게 넓힌 겁니다. 이제 형님말은 못 믿겠습니다. 제 인생 앞으로 제 손으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정육점에서 팔고 있는 고기를 쓸어 담아갔냐. 이 도둑놈 새끼야.>

<형님. 이거 팔지도 못하는 자투리들 버리기 아까워서 제가 가져온 겁니다. 월급도 제때 제대로 안 주셨으니 이거라도 가져가야겠습니다.>

<이 새끼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너 그럼 당장 짐 싸들고 이 집에서 나가. 니 새끼들 엄동설한에 고생해 봐야 정신 차리겠어?>

<아니 이 집은 제 손으로 직접 세운 거라고요. 원래 단칸방 주셨던 것은 이미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이 새끼가.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갈 것이지. 뭔 말이 많냐.>

<이제 곧 추워지는데 당장 나가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며칠 말미는 좀 주셔야죠.>

<난 모르겠다. 너. 당장 나가든지. 아니면 정육점에 계속 나오던지. 네가 정해라.>

정육점을 물려받기 위한 조건으로 무임금으로 일해온 아버지의 쿠데타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날 아버지는 두 대의 뺨을 더 맞았고 어머니와 내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형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큰아버지의 용서를 받은 우리 가족은 그 옥탑방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에 대한 형벌로 더 오랜 시간 동안 정육점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날 저녁. 그러니까 아버지의 생일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모여 앉아 저녁밥을 먹었고 어머니가 깎아주시는 사과 조각을 하나씩 집어 들고 아무 말도 없이 드라마를 보았다. 아버지는 타버린 연탄재와 비슷한 색깔의 내복을 입고 앉아 티브이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벽에 기대앉아 있는 아버지의 눈빛을 읽어내려 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도저히 아버지의 눈빛을 읽어낼 수 없었다. 붉게 충혈되어 있는.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흐릿해 보이지만 그 너머에는 어떻게 서든 또렷하게 뜨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너머를 필사적으로 붙들어 매는. 아버지의 눈동자. 그날 내가 본 아버지의 눈빛이 뜻하는 것은 위압에 길들여진 체념이었을까.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조종할 수 없는 것이 생이라는 진실을 깨닫고 난 뒤의 고독함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한 뒤에 맛볼 수 있는 편안함이었을까. 고압호스의 굉음에 묻힌 어머니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오래도 살았지. 그 양반. 욕심이 많아서 이리 오래 살았나 보다. 걱정 마라. 난 장례식장에도 안 갔다.>

귀전에서 모터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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