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명시에 있는 본가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 5시가 좀 넘어서였다. 겨울의 정점인 1월의 혹독한 추위가 날이 선 바람을 몰고 왔다. 코로 들어오는 냉기 덕분인지 수면부족으로 무거웠던 머리가 한껏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으나 성미가 급한 겨울의 땅거미는 길목들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것과 화합이라도 하듯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은 하나 둘 희미한 얼굴들을 내밀기 시작했다. 걸음이 빨라진 것은 꼭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노량진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면 9시가 조금 못 될 것이었다. 자취방을 옮긴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정리가 덜 된 상태여서 근무가 없는 토요일인 오늘 청소와 짐정리를 끝내고 싶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야간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한 지 벌써 이 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까지 내 멱살을 쥐고 있는 학자금 대출과 취업활동 때문에 진 카드빛의 악력은 쉽게 약해지지 않았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을 바꾸어 가며 아등바등 살아냈지만 여전히 몇 자리의 숫자들은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1월 1일이 되던 12시 정각에도 나는 낡은 방한화와 솔기가 뜯어져 솜이 삐져나온 항공점퍼를 입고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갔지만 안전모를 쓴 이마에서는 스멀스멀 땀이 배어 나왔다. 점퍼 안주머니에 곤히 잠들어있던 휴대전화에서는 잇따라 알림음이 울려댔고 차갑게 얼어있는 화면에는 영혼 없이 새해안부 인사만을 뜻하는 이모티콘이 가득 들어있었다. 지독하리만큼 닮아있는 여러 이모티콘은 소름 끼치도록 기괴하게 보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몸서리쳤다. 오소소 돋는 소름이 집단이 부추기는 상투성 때문인지 한겨울의 냉기 때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몇 분 뒤에 계좌에 하루치 일당이 입금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 사실이 소름을 잠재우고 나를 채찍질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깨달았다.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형태가 없는 영혼이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수치화가 가능한 형이하학일 뿐이라는 걸. 내가 만들어 낸 그 빈약한 논리는 언제부터인가 노동의 확실한 동기부여를 심어주었다. 질병이나 상해가 없을 거라는 전제로 주 5일 만근을 하면 올 가을쯤에는 나를 거머쥐고 있는 지긋지긋한 부채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채무자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 걸음은 금반석 빌라라는 이름 앞에 멈추었다. 5층짜리 낡은 빌라 앞에는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안양천이 흐르고 있었다. 천川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는 찬바람의 윤곽을 그려낼 만큼 선명했고 여지없이 황량했다. 물줄기를 타고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인지 담배는 타닥타닥 마른 소리를 내며 빠르게 타들어갔다. 적막한 냇가 위로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는 살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준비한다고 했던 민어탕의 맑고 시원한 국물을 떠올렸다. 겨울에 웬 민어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끝내 답하지 않았지만 요리 솜씨가 탁월한 어머니가 준비하신 상차림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따듯한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입안에서는 군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새해를 맞아 가족끼리 식사를 하자고 제안한 건 어머니였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아들과 작은 며느리 그리고 장남인 나까지 초대해 당신이 만든 따끈한 밥을 먹여 새해를 시작해 보자는 어머니의 계획은 기어이 당신의 보금자리로 우리들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지어진 지 오래된 빌라였지만 붉은 벽돌로 지어진 덕분에 생기가 있어 보였던 낡은 빌라는 점점 어둠으로 물들어 갔다. 버려져서 오랫동안 방치해 둔 건물처럼 빌라는 스스로 두려운지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듯했다. 나는 담배를 끄고 꽁꽁 얼어있는 몸을 데워줄 수 있는 민어탕의 뽀얀 국물을 상상하며 계단을 올라섰다. 2층이라고는 하지만 1층이 없는 탓에 3층정도의 높이에 위치한 집은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데워진 방바닥과 뜨거운 음식이 만들어지는 조리과정 덕분에 온기를 내뿜고 있을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활짝 열린 현관문 밖으로는 오히려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현관에는 신발 두 켤레가 놓여있었다. 보라색 고무 안에 남색 플리스가 들어간 방한 슬리퍼와 끈이 아닌 폭이 넓은 벨크로가 달려있는 검은색 운동화였다. 작다. 당신의 작은 발이 부서질 정도로 어머니는 죽음에서 삶 쪽으로 내달렸을까. 어머니는 뇌경색 수술을 받은 지 반년도 채 안되었지만 병원신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뇌혈관을 막고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의사는 어머니의 빠른 회복력이 기적이라고 얘기했다. 무엇이 생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병마와 싸워서 승리할 만큼 여전히 정정하시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고 좁은 거실에 발을 딛자 공기보다는 따듯한 온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쨍한 형광등의 불빛 때문인지 전부터 데워져 있던 보일러 때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한 온도였다.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를 집구경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던 건 어머니의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 두 개에 화장실, 좁은 거실과 보일러실 겸 베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딸린 17평의 빌라가 어머니의 보금자리였다. 병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건 이 집 때문이었을까.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장만한 이 집에서 어머니는 병력의 세월을 관통해 냈고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으며 작은 아들의 결혼자금까지 보태주었다. 대출금을 모두 갚았던 날 나는 목격했다. 성마르게 일그러졌던 당신의 눈가가 결국엔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 잡는 것을. 그것은 환멸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아릿한 허무도 아니었다.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꺠달음에서 엿볼 수 있는 체념적인 답보 같은 것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집은 처음 온 장소처럼 생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이란 문은 모두 열려있어서 그 안에 자리 잡은 세간들이 한눈에 보였다. 그 광경은 마치 발치를 앞둔 거대한 입들처럼 보였다. 폐쇄된 공간에 있었을 땐 나름대로의 빛을 내던 세간들이 모든 문을 개방하고 나자 길바닥에 버려진 세간들처럼 퇴락하고 남루해 보였다. 발치를 앞둔 벌어진 입에서 썩은 치아들이 보이는 것처럼. 나는 그 생경함에 마취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란다 쪽에서 인기척과 함께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작은 아들이냐.>
어머니의 목소리가 베란다에서 들려왔다.
<큰아들이에요. 어머니.>
<어이구, 네가 먼저 왔구나. 그래. 어서 와라. 날씨가 추운데 빨리도 왔구나.>
<근데 왜 문은 모두 열어두신 거예요.>
<응, 싱크대 배수구가 막혔지 뭐냐. 그게 하수구까지 역류해서 집안에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래서 내가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뒀다. 그래도 동파돼서 배관이 터지진 않은 모양이다. 집이 오래돼서 그동안 기름찌꺼기니 뭐니 쌓여서 막힌 것 같다.>
<사람을 불러서 뚫어야겠어요. 근데 오늘 주말이라 안될 텐데. 이제 저녁이잖아요.>
<응, 그렇지 않아도 사람 불렀다. 아까 낮부터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주말에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더라. 곧 올 거야.>
<근데 베란다에서 뭐 하세요?>
나는 베란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오지 말어. 지금 김치 몇 포기 담그고 있다. 새 아가가 김치를 사먹는대잖냐. 사 먹는 김치가 맛이나 있겠냐. 집에 갈 때 요거 손에 쥐어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냐. 재료들을 쌓아놔서 발 디딜 틈도 없어야. 좁으니까 너는 방안에 들어가 있거나 거실에 대충 앉아 있어.>
나는 머쓱해져서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플라스틱 통들이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만 가만히 선 채로 들을 뿐이었다.
<제가 싱크대 쪽을 한 번 봐볼게요. 그래도 배관 기사가 오기 전에 손을 좀 보면 나을 거예요.>
<내비둬라. 네가 괜히 손만 대면 일이 더 커지 잖냐.>
내 손을 저항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거세게 들려왔다.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싱크대 쪽에서 날 것의 비린내와 기름찌꺼기 같은 냄새가 훅하고 끼쳐왔다.
싱크대도 마찬가지로 모든 문과 서랍이 열려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도마가 올라와 있었고 손질이 덜 된 냉동된 민어 반토막과 젖은 미나리가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가스레인지에는 전골용 냄비가 올려져 있었고 아주 약불로 조리되고 있었다. 뚜껑이 덮여있어서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끓어오르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배수구가 위치한 개수대 아래쪽 선반은 문이 활짝 열린 채 휑한 공간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안에 여위고 가느다란 몸을 가진 배수구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허리를 숙여 가까이 가보니 상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하게 진동했다. 배수구의 끝에 연결된 개인배관이 시작되는 좁은 입구에서 미세하게 물이 역류하고 있는 탓에 장판아래 시멘트 바닥은 오염된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제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어오를 것이었다. 개인배관으로 연결되는 배수구의 끝부분에 손을 대보았다. 무언가 꿀렁이는 것이 응고된 기름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기름덩어리 때문에 역류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 들었다. 배수구의 끝을 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너트가 개인배관과 배수구를 이어주는 이음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트를 풀어서 배수구 끝에서 만져지는 기름덩어리를 제거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개수대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배수구에 연결된 너트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끙끙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낡은 배수구는 중간에서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끊어진 상단 부분에서 개수대에 고여있던 음식물 찌꺼기들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다행히도(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배관과 연결된 하단 부분에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물이 역류하지는 않았다. 전처럼 미세하게 지속적으로 역류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베란다에서 나에게 물었다.
<뭐냐. 뭐 또 손댔냐.>
<아, 그게 배수구가 끊어졌어요. 너무 낡아서 그런 건가. 손만 갔다댔는데도 끊어져 버렸어요.>
<어휴, 못 산다. 내가. 그러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냐.>
집안에 모든 문을 열어 놓았지만 어머니의 곤두선 단어들은 밖을 향하지 않고 오직 나를 향했다.
<별일 아녜요. 끊어지기만 했고요. 다른 문제는 없어요.>
<끊어진 게 다른 문제가 아니면 뭐냐. 그냥 방안에 들어가 있어라. 그게 도와주는 거다.>
<네.>
어머니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베란다에서 며느리에게 줄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거세게 들려왔다. 급기야는 우당탕 거리며 큰 대야가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어머니의 습관이었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가가 자신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자극했을 때 어머니는 자신의 기분을 주변에 알리듯이 세간들을 부술정도로 닦기 시작했다. 소리의 세기는 방문을 닫고 있어도 선명하게 들려왔고 닫힌 현관문 틈을 비집고 1층 아래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못마땅한 심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서 표현하는 방식은 주변 사람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주변환경을 다스리는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싱크대와 마주한 작은 방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 모든 문을 열고 있던 탓에 집은 냉기로 가득했다. 좁은 집이라서 그런지 냉기는 서로 옹기종기 모여서 응축되어 더 진하게 차가운 기운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외투도 벗지 않고 작은 방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문부터 닫았다. 세로로 좁게 나있는 창을 닫자 방안을 휘감던 냉기가 수그러들었지만 곧이어 현관을 타고 들어오는 냉기가 방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서 방 문을 닫고 있을게요. 혹시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내 말은 좁은 거실을 관통하지 못했나 보다. 어머니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내 귀에는 여전히 세간들이 부딪히는 소리들만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닫고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냉기가 고스란히 엉덩이에 전해졌다.
2.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건 현관 쪽에서 들려온 인기척이 아니라 베란다 쪽에서 줄기차게 들려오던 소리의 흐름이 단절되어 만들어진 기묘한 적막감 때문이었다. 나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그 적막감이 만들어내는 기운을 감지했다. 짧은 적막감은 석연치 않음으로 이어졌고 석연치 않음은 오묘한 폐색閉塞으로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틈으로 어머니의 음성과 젊은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좀 들어가겠습니다.>
<어,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
<안녕하세요. 어머님. 막힌 곳이 어디예요?>
<이쪽이에요. 금방 뚫을 수 있는 거예요?>
<한 눈으로 봐서는 잘 모르고요. 제가 한번 봐볼게요. 이거 좀 바닥에 둘게요.>
<네. 이야. 요새는 장비들이 좋네요. 무슨 화면도 보이고.>
<배관 작업은요. 이렇게 작업용 내시경을 배관에 직접 넣어서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야 돼요. 안 그러면 금방 또 막혀버리니까요.>
<오늘 내시경 작업도 하는 거죠? 집이 오래돼서 배관이 멀쩡할까 몰라.>
<제가 이 동네 자주 오거든요. 건물 외관을 보니까 배관은 아직 튼튼할 거예요. 집 지을 때 그렇게 허투루 짓진 않으니까.>
어머니가 불러둔 배관기사가 온 모양이었다. 나는 방에서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어라.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힘을 주어 손잡이를 돌렸을 때 파열음과 함께 낡은 쇳조각이 바닥에 떨어졌고 내 손에는 부서진 손잡이가 쥐어져 있었다.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고 스스로 좁은 방 안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지만 밖에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낯선 누군가에게 노크를 하듯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안에서 문고리가 부서져버렸어요. 문이 안 열리는데 바깥에서 열 수 있어요?>
<문이 안 열린다고? 어디.>
문이 열리길 기대했지만 밖에 달린 문고리가 헛도는 소리만 방 안으로 전해졌다.
<기사양반. 이 문 좀 볼 수 있어요? 아들이 이 안에 있거든. >
<문이 잠겼군요. 어디. 어휴. 이거 사람 불러야겠는데요.>
<집이 오래돼서 별 게 다 속을 썩이네요. 얘. 내가 요 앞에 전 씨 아저씨를 부를 테니까. 거기서 조금만 있어봐라.>
<아드님.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요. 배관 작업 시작하면 하수구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요. 문이 닫혀있으니까 지독한 냄새는 피할 수 있을 거예요.>
맥없이 흘러나온 네.라는 대답은 여전히 누군가의 귓전에 닿지 못했다. 닫힌 문 때문인지 어머니와 배관기사의 대화는 물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작은 방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나는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
<얘. 전 씨 아저씨가 온단다. 30분 뒤에 도착한단다. 조금만 기다려보거라.>
<혹시 전 씨 아저씨라면 예전에 아버지한테 사기 쳤던 사람 아니에요?>
<그래. 맞다. 근데 옛날 얘기 아니니. 이제는 다 잊고 산다. 너는 참 기억력이 좋구나.>
<아버님이 친구분한테 사기를 당하셨나 봐요.>
<네. 아주 오래전에. 이제는 다 잊고 살아요. 같은 동네니까.>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죠. 근데 이 배수구는 왜 끊어진 거예요?>
<방 안에 있는 아들놈이 지가 좀 만지면 될 줄 알았나 봐요. 아들놈이 끊어 논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배수구 작업 끝나면 서비스로 새 걸로 교체해 드릴게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자, 내시경을 한번 넣어볼게요.>
밖에서는 두꺼운 로프나 고무호스 같은 것이 휘리릭 감겼다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막혀있는 배수구가 뻥하고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어 내 가슴은 갑갑하기만 만했다.
<자, 보이시죠. 물이 중간에 고여있는 거. 제가 보기에 이 배수구랑 연결된 개인배관에서 건물 공용배관으로 흘러들어 가는 입구가 막힌 거 같아요. 아무래도 집이 오래돼서 그동안의 기름 찌꺼기들이 쌓여 있을 거예요. 일단, 제가 1층 공용배관 쪽도 내시경을 넣어볼게요. 그래야 막힌 곳을 정확하게 알 수 있거든요.>
빌라가 흔들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딛는 사내의 발소리가 닫혀있는 문을 울렸다. 거대한 발소리가 멀리서 들렸다가 이내 현관 쪽으로 좁혀왔다. 사내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말이 맞네요. 이 집 개인배관이랑 빌라 공용배관의 이음매 부분이 막혀있어요. 여기서 1차적으로 고압 호스로 뚫어내고요. 1층 공용배관도 고압으로 뚫어내면 될 거 같습니다.>
<네. 금방 되죠?>
<네, 그럼요. 그나저나 요새에도 저런 게 보이네요.>
<뭐가요?>
<추운 날 애들을 발가벗겨서 집 밖에 내놓는 거요. 히힛. 생각해 보니 저도 어릴 때 저런 거 많이 당했거든요.>
<어머. 누가 그런대요.>
<여기 창문으로 보일 거예요. 여기 바로 옆 건물이요.>
<어머. 히히히. 진짜 오랜만에 보네. 저런 거. 나도 옛날에 아들들 말 안 들으면 한 겨울에 빤쓰까지 벗겨서 집 밖으로 내쫓았었는데. 그렇게 한 몇 십분 놔두고 데리고 들어오면 벌벌 떨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지. 히히히.>
실성한 노인네처럼 웃는 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와 내 몸을 휘감았다. 기괴함과 냉기가 깃든 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도 어렸을 때 발가벗겨져서 골목으로 내쫓기면 어떻게든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두 팔로 다리를 감고 저렇게 쪼그려 앉아 있었거든요. 신기한 게 그때마다 같은 반 짝꿍이나 여자애들이 지나가요. 그럼 꼭 눈을 한 번씩 마주친다니까요. 크크큭. 쟤도 그러려나.>
<그래요. 그래. 히히히. 나도 아들 어렸을 때 기억이 나네요. 작은 아들 말고 큰 아들한테 많이 그랬지.>
<방 안에 계신 분이 큰 아드님이시죠?>
<맞아요. 히히히. 어떻게 아셨대?>
<척하면 척이죠 뭐.>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있던 기억 속에서 어느 한가닥이 손 끝에 닿았다.
이 맘 때였지. 이모가 사줬던 손목시계를 학교 화장실에서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맞고 발가벗겨져서 집 밖으로 쫓겨났었지. 아마 어른들처럼 멋지게 손을 씻고 싶었을 거다.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아이는 교실에서 나뿐이었으니까. 우아하게 시계를 먼저 풀고 세면대에 올려두었지. 손을 거의 다 씻었을 때 수업종이 울리는 바람에 부랴부랴 교실로 뛰어 들어갔던 기억. 교실에 앉아 물에 젖은 차가운 손을 입김으로 녹여내고 있을 때 떠올랐지. 시계를 세면대에 두고 왔다는 걸. 그 어린애가 무슨 용기가 있어. 손을 들어 선생님께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도 못 하고 수업 내내 식은땀만 흘리며 전전긍긍했지.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보았지만 이미 시계는 사라져 버린 걸. 식은땀으로 젖은 자주색 스웨터 위로 송골송골 성에가 맺히는 걸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발가벗겨져서 골목에 나왔을 때 예감했지. 두려움보다는 수치심이, 수치심보다는 아는 얼굴을 마주했을 때 당혹감이, 그리고 그 당혹감마저 박탈하는 것은 절망감이라는 걸. 예감이라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도 정확해서 그 예감을 맞힌 당사자가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내 예감은 늘 정확했으니까. 저 멀리서 깜빡이는 검은 눈동자들이 발가벗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지. 굶주린 짐승들이 어둠 속에서 연약한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소리 없이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어. 그 눈동자의 주인이 같은 반 짝사랑하던 여자애라는 걸 눈치챘을 때에는 그들은 이미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지. 여자애는 자기 엄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다음날 내가 그 여자애와 눈을 마주쳤던가. 한 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담임 선생님은 같은 반 급우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작성하게 했지. 거기에 그 여자애는 이렇게 적었더라.
니 고추 너무 꺼매.
그걸 보고 한참 동안 웃었던 거 같은데. 너무 웃어서 볼이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억이 모든 재생을 마쳤을 때 문 밖에서는 발가벗겨진 아이를 훔쳐보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