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가을 타나 봐

돌아왔구나 김고독이

by 보림월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어제는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목덜미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가을비가 내린 뒤부터 기온이 떨어지는 건 자연의 이치이지만,


얼마 전까지 선풍기를 틀어놓고 지냈는데 갑작스레 겉옷까지 싸매고 다니게 하는 건 갑자기 훅 들어온 계절의 뻔뻔함을 실감케 한다.


딱 이맘때쯤 되면 가을이란 계절이 주는 감정은 쓸쓸함이라는 걸 깨닫는다.


예전부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누가 그랬지?)


난 키가 큰 편이 아니라 영웅 본색의 주인공처럼 긴 트렌치코트를 멋지게 휘날리며 다닐 수는 없지만, 차갑고 씁쓸한 고독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씹어낼 수는 있다.


그렇다고 발품을 팔아 고독을 직접 찾으러 다니지는 않지만

나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고독은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뭐랄까? 즐기는 편이다.


이렇게 날이 차가워지면 고독을 즐기기 위해 내가 하는 것들이 있다.


즐겨봤던 홍콩 영화를 찾아서 보고 닭살 돋는 문장으로 점철된 구닥다리 연애소설을 읽는다.


사실 이 행위를 저지르는 건 과거에 침잠하기 위해서인데,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매여서 후회하는 일 따위는 없으나, 지난날의 청춘을 회상하는 것만큼 고독에서 멀어지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쓸쓸함을 마주해야 할 때가 오면 영화 해바라기에서 마지막 씬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돌아왔구나 김고독이(오태식이)" 라는 말을 속으로 되내며


고독을 반겨준다.


저기 고독에 내 성을 갖다 붙인 건 뭐 고독이라는 감정도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감정이기에 유치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식으로 쓸쓸한 계절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고독과 친구가 되며 과거의 청춘을 회상하면서 계절을 즐기다가 어떻게든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외로움과 적적함이 동반되는 계절은 자칫하면 깊은 권태와 끝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들 수 있기에 고독으로 무장한 가을이라는 계절을 잘 이겨내는 방법도 살면서 깨닫게 되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여름에는 무더위를 이겨내고 겨울에는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