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에 대한 사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라?
자기 계발 콘텐츠나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는 문장이다.
꽤 어렸을 때부터 나의 모토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자'였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조직에서나 쓸모 있는 사람으로 존립하는 건 숭고한 자기희생과 맞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죽여가면서까지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긴 싫었다.
아마 그때부터 '대충 편하게 살자'라는 마인드가 무의식에 새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기준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을 꼽으라면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총수 유명 연예인 등이었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은 결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비관적인 운명론자 처럼 삶의 모든 것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내비쳤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하지 마라
이건 진리와도 같다.아니 진리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리는 없다.
그리고 그런 욕심을 부리는 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두컴컴한 심연 속으로 직접 발을 딛는 것과도 같다.
반추해보니 타인의 눈에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늘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늘 통속적으로 옳은 것들만 선택하고 남들이 보기에 바른길로만 가려고 했다.
스스로 삶의 주체자로서의 의지를 꺾어버린 셈이다.
의지를 꺾인 인간은 날개가 부러진 새와도 같다.
자유롭게 날지 못하기에 누군가가 데려다주는 곳으로만 가야 하거나 목적지를 모르니 그들의 뒤를 따라가야만 한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렇게 선택한 삶의 태도로 인해 내가 마주하는 시간들은 시지프스 신화처럼 고통이 반복되는 순간들뿐이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기에 아무런 탓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쳐 놓은 올가미에 걸린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댈 때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이유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나를 막고 있는 건 무엇인가?
갑자기 한 번쯤 부딪혀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겨났다.
나를 막고 있는 걸 부수고 주체자가 되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자라고.
우리는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막고 있는 걸 깨야만 했다.
그것은 남들의 시선 즉,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한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벌거벗은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내가 가진 결점들과 하자를 인정하며 조금이라도 감추지 않고 정직한 태도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 하나뿐인 친구 말이다.
이들은 나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들에게 너는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야."
순간 깨달았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기준은 내가 직접 정한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깨닫고 몇 안 되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사람들에게만큼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도 바로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소중함으로 간직된다면
그것이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진짜 대체 불가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누구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하냐 안 하냐의 차이는 결국 자신의 태도에 있다.
자신이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세상의 모든 이가 자신의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