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분노와 자기혐오가 현재를 살게 한다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때때로 알 수 없는 고통에 잠식될 때가 있다.
그것은 매너 있는 운전자처럼 깜빡이를 키며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늘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느닷없이 찾아온다.
야금야금 제 살을 갉아먹는 그 고통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골몰하다 보면 그것이 어디로부터 찾아온 것인지 들여다보게 된다.
웃기는 건 그것이 항상 과거에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제서야 고통의 원인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왜 지난날들을 제대로 살지 않아서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분노가 쉴 새 없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비관과 자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기의 삶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런 시기가 찾아오면 결코 내 삶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절교를 선언하듯 나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려고만 한다.
이건 자기 연민과는 다르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 그래서 자신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동정의 감정과는 뿌리가 다른것이다.
자기 분노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온전한 노력들을 방해한다.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 치부하며 그간의 집적된 시간들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자기 분노에 휩싸인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 벼랑으로 내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벼랑 끝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미래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갈지 모를 태풍과도 같은 깊은 한숨만을 텅 빈 허공에 내몰아 쉰다.
그 텅빈 공간이 서늘한 숨으로 메워지는 찰나에 나에게 있어서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미 끊어버린 담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몰아붙일수록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는 결과에 실망해 무기력해지는 역설은 오랜 시간 동안 고치지 못한 지병 중에 하나다.
이 빌어먹을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늘상 실패의 길만 걷는다.
지나간 선택을 비난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자책할 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현재의 나뿐이라는 걸 되새기며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의 원인이 과거의 선택도 미래의 결과도 아님을 받아들일수록 자기 분노와 혐오는 그 세력을 키워 나간다.
얼마나 나 자신을 낮춰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건지 하물며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면 그 고통이 해방을 안겨줄는지는 미지수이다.
긴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배워서 남은 거라곤 딱딱하게 경직된 인내뿐이다.
톱니처럼 매서운 바람이 찾아오는 계절에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은 인내만을 한 손에 거머쥔 채 한줄기 빛조차 허용되지 않을 어두컴컴한 심연 속으로 오늘도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