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나눌 용기
타인의 불행에 무감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행을 기나긴 삶의 어떠한 당위로 포장하며 위로라는 껍데기로 어른 행세를 하곤 했다.
마치 그러한 불행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일종의 지독한 감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불행이라는 단어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혀 버릴 그 무엇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백사장을 적시는 가벼운 파도의 포말로 치부하기에는 위험한 것이었다.
나에게 불행이 닥쳐왔을 때 나는 나의 불행을 그렇게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어떤류의 불행이건 불행은 모든 시간을 멈추게 만드는 법이다. 겨우겨우 얻게 된 찰나의 행복도 거대한 불행 앞에선 무릎을 꿇는 법이니까.
다행히도 나에게 닥쳐온 그 불행이 타인의 불행은 빗질에 손쉽게 빠져버리는 얇디얇은 머리카락 한 올처럼 받아들였던 나의 오만한 생각을 말끔하게 헹구어주었다.
타인의 불행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의의 거짓이라는 탈을 쓰고 그들의 불행이 더 이상 득세하지 못하게 그 틈을 같이 감싸주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다.
허나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그들과 같은 무게의 불행이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행이 가져다준 험준한 삶의 파고 앞에서 나는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토록 무렴한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상의 공간에서 신명 나게 떠들어봤자 되돌아오는 건 나와 닮은 이들의 조소뿐.
자신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유일한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라는 사실이 내 손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문장 속 타인의 불행이 현재 나의 불행이라는 사실도.
꽤 오랜 시간 스스로가 만든 불행 속에서 갇혀 지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상처는 상처로 밖에 위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을 위로하기 위해선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서로 다른 불행을 마주하게 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시리도록 잔인할 수도 있겠다.
불행을 잊기 위해 또 다른 불행을 마주하라니.
하지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의도를 가진 악이라는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선도 있을 법하니까 말이다.
오늘의 불행 속에서 살고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불쑥 찾아온 불행 앞에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별 거 아니랍니다. 우린 다 이겨낼 수 있어요. 인생은 참 짧지요. 하지만 삶 속에 불행과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들어 준답니다. 그게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모순이니까요."
삶 속의 불행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리고 타인의 불행에 기꺼이 자신의 불행을 보여줄 용기를 가지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