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다한 꽃잎들은 차가운 바닥에서 소멸되길 기다리고 있다.
찬란한 계절을 더 이상 향유할 수 없음을 아는 듯이 체념을 이불 삼아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봄이라는 계절은 기분 좋고 아름다운 방문객이었으나 그 체류 기간이 너무나도 짧고 또 그 소리 없는 사라짐은 너무나도 당돌했기에 나는 그 헤어짐에 더욱더 매달렸다.
잡지 않으면 영영 달아나버릴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가슴이 서늘해진 까닭에 이 계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낙화를 밟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날개를 달기 전에는 발밑에서 으스러지는 여린 꽃의 비명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 걸을 때마다 허공에 들린 발을 염려하곤 했다.나의 사려깊음이 죽어버린 사물에게도 기능한다는 사실에 쓴웃음만이 입가에 번졌지만,그것조차 계절의 산물로 느껴졌다.
발밑에서는 해변의 밀물처럼 잇따라 숨 막히는 비극이 일어나지만 고개를 들어 폐 속 가득히 계절이 스며든 숨을 들이쉬면 공기 속에 섞여서 떠 있는 미세한 꽃가루가 그 소리에 맞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떠는 걸 알 수 있다. 환희와도 같은 그 공기가 조금 흔들리기만 해도 그 꽃가루들은 퍼뜩 숨을 되돌린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몰래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과도 같이 봄은 그림자 속에 제 모습을 가둔 채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어렴풋한 어둠이 꽃가루를 조용히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진 꽃가루는 그 어둠을 좀 더 농밀한 것으로 바꾸어 간다. 누군가의 염탐을 인지하면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정사처럼.
봄은 그렇게 계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부패하며 진한 향기를 풍긴다. 검게 썩고 있는 사과가 진한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