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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길몽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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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림월 Nov 08. 2024

길몽#5

그 여자

2024년 07월 08일 월요일 19시 47분. 희강의 어머니는 차량 급발진으로 인해 벌어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였다.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희강은 급하게 달려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곧 숨을 거두었고 어머니의 시신은 사후 경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차갑게 식은 무거운 육체만 남겨져 있었다. 희강은 눈물도 나지 않았고 슬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그는 별안간 응급실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허공으로 들어보았다. 밀랍처럼 딱딱한 피부에는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는 분명 텅 비어있을 테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혹시 삶의 무게를 버리지 못하고 가시는 곳까지 짊어지고 갔기 때문이 아닐까. 가시는 길 이왕이면 가볍게 가셔야 될 텐데. 편하게 못 보내드린 것 같아 희강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적멸의 공간에 누워있는 창백한 어머니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입술은 불행이 입을 틀어막아 굳게 다문 것처럼 보였다. 묵직하게 닫혀있는 입술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해요. 엄마' 희강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자신이 평소에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완만하지만 착실하게 육체의 소멸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몇 가지의 예감이 무수한 점을 만들어내고 불길한 꿈들이 그 점에 선을 그은 다음 매끄럽게 잘 이어졌는지 계산을 끝낸 뒤에 테두리를 도려내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완벽한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연달아 꾸었던 꿈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예고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자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에 일조를 한 것 같아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희강은 어머니가 그동안 희생만 해오신 것 같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죽음이 남긴 것은 한 인간에게 쥐어줄 한 움큼의 연민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게 소용없는 짓이라고 느껴졌다. 그냥 누워있는 저 여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그렇다면 하루빨리 편하게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장례절차를 밟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희생을 원한다. 천국마저도. 죽음을 원한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받고 경찰들이 가져온 사망확인서에 서명을 했다. 경찰은 급발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확정하고 중태인 피의자가 회복이 되면 차후에 조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희강은 알겠다고 말하고 장례식장 사무실을 찾아가 장례절차를 밟은 다음 병원 지하에 위치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 희강은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부고 문자를 보냈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부고 문자를 보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여러 가지 상담을 한 뒤에 거기서 빌려주는 검은색 상복을 입고 아무도 없는 분향실에 혼자 앉아 미지근한 비락식혜를 마셨다. 몇 분 뒤에 사무실에서 영정사진과 헌화를 가져왔다.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받고 향로에 향을 피웠다. 그제야 분향실 입구에 붙어있는 모니터에 어머니의 이름이 올라왔다. 희강은 이름 모를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故 최윤옥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니터 속 어머니의 사진을 보니 희강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

물결 같은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은 물결처럼 편하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밤 10시쯤부터 조문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근무하신 식당의 사장님과 다른 직원분들이 제일 먼저 오셔서 빈소 입구 호상소에서 문상객록에 서명을 했다. 호상소 의자에는 사무실 직원이 앉아 있었다.

아직 입관 전이라 희강의 어깨에는 상주완장이 없었다. 그래도 희강의 얼굴을 보고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희강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후에 먼 친척들과 어머니의 지인들이 조문을 왔고 밤늦게 학만이 조문을 왔다. 학만은 향로에 향을 피우고 영정사진에 큰 절을 했다.

조문을 마친 학만은 희강에게 괜찮냐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발인 날에는 학만과 혁진이 관을 들어주기로 했다. 늦은 밤시각이라 더 이상의 조문객이 방문하지 않을 것 같아서 둘은 접객실로 자리를 옮겨 장례 음식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학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건조한 희강의 눈을 보며 말했다.


"어? 안 울었나 보네?"


"어, 어,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네. 그냥 덤덤해. 그리고 그냥 좋은 곳에 편하게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야."


학만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우리 정도 나이 먹으면 눈물이 안 나는 건가? 얼마 전 혁진이도 안 울더라고."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슬퍼할 겨를이 없는 걸지도 모르고."


학만은 아무 말 없이 입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 여자. 나 때문에 여태 고생 많았겠지?"


희강의 물음에 학만은 픽 소리를 내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끼, 어른 다됐구만."


둘은 동이 틀 때까지 함께 소주를 마셨다.


다음 날 아침 9시 30분에 입관식을 했다. 입관식 참여자는 희강과 학만 둘 뿐이었다. 깨끗하게 잘 다려진 수의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은 어제보다 편안해 보였다. 입관이 끝나고 장례 지도사가 말했다. 어머니가 다 내려놓고 떠나셨다고, 사후경직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수의를 입히기 힘들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관절이 수의에 부드럽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시신이 부드럽다는 건 고인이 미련 없이 다 내려놓고 떠나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희강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불편한 몸으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지 않으신 게 정말 다행이라고. 당신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질 아들을 위해 끝까지 희생을 버리지 않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희강은 닫힌 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어요."


장례를 무사히 마친 뒤 집에 돌아온 희강은 식탁에 앉아 냉장고를 바라보며 한라산이 찍힌 엽서를 바라보았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몸에 기운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발 끝이 저릿한 느낌, 아차 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위기감 같은 것들이 뒤섞여 혼곤함으로 밀려왔다. 고개를 돌려 거실에 있는 움푹 파인 낡은 소파를 쳐다봤다. 움푹 파인 그 자리에 어머니가 앉아 계실 것만 같았다. 황막한 집안. 이제야 희강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그것은 요의나 재채기 같았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눈에서 쏟아졌다.

식탁에는 영혼이 빠져나가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 영혼은 껍데기만 남은 희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울 속에 자신을 보는 것과 달랐다. 그도, 그의 영혼도, 타버린 재의 형상처럼 모두 나약한 것이었다.

희강은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그는 차마 입에 올려보지 못한 말로 불러본다.


"최윤옥 씨."


그 부름에 한 줌의 온기가 어머니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따스함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소파에서 어머니가 일어나 밥을 차려주실 것 같았다. 이토록 허술한 삶의 편린들이 죽음 앞에서 더욱 빛을 내고 뚜렷해진다는 게 희강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는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한참 동안 울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먹을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며칠 동안 방치된 갈비찜이 있었다. 희강은 차가운 갈비찜을 데우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켰다. 갈비찜이 끓어올라 냄비에서 휘이익 소리가 날 때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바른 인력

광명시 소하동 초대형 물류센터 건설 현장 투입 될 인부 모집

일 많으니까 언제든 연락 주세요.



희강은 그 문자 메시지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회사

저장하시겠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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