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길몽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림월 Nov 07. 2024

길몽#4

바다 거북이


2024년 07월 08일 월요일

헬리콥터를 타고 목적지도 모른 채 거대한 바다를 건너가고 있음. 하늘이 엄청 파랗고 발 밑으로 보이는 광대한 바다는 빠져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푸르고 투명하고 깊음. 갑자기 헬리콥터의 엔진이 터지면서 바다로 추락함. 수영을 못하는 내가 바다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허우적 댐. 저 멀리서 보트 같은 게 이쪽으로 오는 게 보임. 자세히 보니 보트가 아니라 몸집이 보트 만한 바다 거북이임. 바다 거북이가 내 앞에 와서 정지함. 나는 등껍질에 올라탐. 거북이는 내가 올라탄 걸 확인하고 수면 위에서 어디론가 헤엄침 그 속도가 보트처럼 엄청 빠름. 얼마 후 정면에 야자수가 눈에 들어오면서 육지의 모습이 보임. 거북이는 쏜살같이 헤엄쳐서 그 육지에 나를 내려줌. 나는 고맙다고 거북이의 머리를 쓰다듬음.



희강은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눈앞에 꿈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이 잔상으로 남아 연달아 중첩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놀라운 기쁨에 희강은 체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밤사이 식었던 몸에서 환희로 타오른 희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컴퓨터에 방금 꾸었던 꿈을 기록하는 동안 우주의 에너지가 하나의 점으로 모여서 자신에게 응축되는 것 같았고 지구의 조위가 바뀌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낡고 지친 병력의 세월들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본인에게 진작에 왔어야 할 길조가 먼 곳을 돌고 돌아 드디어 자신의 시간성에 속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북이가 나오는 꿈은 재물이나 행운, 성공, 부귀의 상징을 갖는 길몽입니다. 바닷가에서 거북이가 나오는 꿈은 횡재수가 생기고 재물운이 높아집니다. 꿈속에서 거북이 등에 올라탔다면 높은 자리에 올라서 사람들을 지도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또 큰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꿈은 영감을 얻어서 유명해지고 큰 일을 할 길몽입니다. 큰 거북이를 타고 바다나 강을 건너는 꿈은 당신의 일이나 사업이 일취월장 성공적으로 될 것입니다. 부를 창출함에 있어서 큰 기쁨을 볼 수 있게 될 길몽입니다.



희강은 물도 마시지 않고 소변도 보지 않은 채 포털사이트로 거북이가 나오는 꿈을 검색했다. 자신이 꾼 꿈이 길몽인 것을 확인하고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켜면서 중얼거렸다.


"이번엔 찐이다. 거북이는 길몽의 끝판왕이라고!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어."


앞으로의 날들에 청신호가 켜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자 심한 갈증이 밀려왔다. 희강은 냄새나는 좁은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갔다. 현관 쪽을 보니 어머니가 출근을 하고 있었다. 거실로 나온 희강을 본 어머니는 기괴한 몰골을 한 자신의 아들을 보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들 잘 잤어? 엄마는 나갔다 올게. 냉장고에 갈비찜 해놓은 거 있으니까 데워서 먹거라."


"네, 걱정 말고 다녀오셔. 이제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희강은 싱거운 웃음과 함께 누런 치아를 보였다.

아들의 멋쩍음에 어머니는 애써 정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아들, 난 아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 그게 무엇이 됐든. 돈을 벌지 않아도 돼. 그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아무거나 괜찮아. 그냥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상관없어. 너 자신을 절대 놓지 말고 한 번쯤은 믿어보렴."


희강은 그런 어머니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어휴, 늦겠네. 알겠으니까 조심히 다녀오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서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의 뒷모습. 축 처진 옹색한 어깨를 보고 앞으로 일이 잘 풀리면 어머니께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명품가방을 사드리는 거야. 그것도 직접 백화점에 가서 말이지. 그리고 좋아하시는 참치도 사드리고 금가루 뿌린 최고급 오도로를 드시면 좋아하시겠지?'


아들의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희강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희강은 물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에 깔려있는 코인 거래소앱을 켜보았다. 자신의 전재산으로 매수한 잡코인은 갑자기 거래량이 폭발하면서 호가창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희강은 책상 위에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래프가 우상향 하고 있는 차트를 보면서 킬킬 웃으면서 중얼댔다.


"이거네. 이거야. 낄낄낄."


녹이 슨 회갈색 새시유리창에 작은 틈새로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굼뜨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한창 차트를 보고 있을 때 희강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바른 인력

광명시 소하동 초대형 물류센터 건설 현장 투입 될 인부 모집

일 많으니까 언제든 연락 주세요.



희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재수 없게."


사실 희강은 며칠 전 담배값을 벌기 위해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그날 동네에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 투입됐었는데, 초보자인 희강에게는 비교적 편한 작업인 교통 수신호 업무가 주어졌다. 오전 5시에 사무실로 나가서 대기하다가 오전 7시에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12시에 근처 함바집에서 점심을 먹고 1시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과도한 양의 식사를 해서 그런지 더운 날씨에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다 실수로 수신호를 잘못하는 바람에 레미콘 트럭과 일반 도로를 주행하던 승용차가 접촉사고를 낼 뻔했다. 다행히도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희강보다 두 살 어린 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희강에게 큰소리로 면박을 주었다.


"아, 아저씨! 이런 거 하나도 제대로 못해요. 일 못할 거 같아서 존나게 쉬운 거 시킨 거구만. 어휴, 날도 더운데 사람까지 진상이네."


희강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이 어린 팀장에게 당한 수모에 수치심과 모욕감이 치밀어 올라 다 내팽개치고 현장을 뜰까 고민했지만 새벽부터 고생한 게 아까워서 어금니를 깨물고 울분을 삼켰다. 그렇게 인내를 가지고 꾹 참고 버틴 게 군대시절 유격훈련 이후로 처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멋대로 살았으니 가볍게 벌 받는다 생각하고 오늘 하루 일당만 챙기면 그다음부터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오후 5시에 현장에서 바로 퇴근을 하고 1시간 뒤에 집에 도착하니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바른 인력 일당

136,000원 계좌입금



집에 돌아오니 신체 마디마디가 저려왔고 내장은 누가 걸레를 짜는 것처럼 손으로 잡고 뒤트는 것 같았다.

몸속에 독액이 솟아나서 혈관을 타고 돌아 근육과 모든 신경들을 썩게 하는 기분이었고, 하루종일 땀에 쩔은 몸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신발끈을 풀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희강은 샤워기로 찬물을 맞으면서 마모된 육체와 정신에 손질을 하듯이 공들여 가다듬었다. '하, 먹고사는 게 더럽게 힘들구나'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가파른 삶의 질곡 같다고 생각했다.

그냥 먹고사는 것도 오르막길 같아서 숨이 차는데 이런 중노동에 속박되어야 하는 인생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정상이 보일까. 정상은 원래 그 면적이 좁디좁아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텐데 그러면 다시 내려와야만 하는 건가. 정상에 올라가 보지 못한 자는 굳이 내려와야 될 일도 없다. 날개를 가지고 있어도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날개를 펼 수 없듯이. 그래서 희강은 높은 곳을 쳐다만 봤지 두 발로 올라가진 않았고 등뒤에 날개는 펼쳐보지도 않고 오랫동안 굳은 채로 방치했다. 오래된 휴대폰의 배터리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의 전원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꺼져가고 있었는지 희강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날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자 공기 중에 누군가 수면제를 뿌려놓은 것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희강은 인력사무소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 조소를 날렸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한 캔맥주를 꺼냈다. 식탁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엽서를 보았다. 엽서에는 한라산 정상의 가을 풍경이 찍혀있었다. 희강은 제주도를 가 본 적이 없다. 어째서 저 사진이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은 아름다웠다. 희강은 한라산은커녕 북한산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63 빌딩도 가본 적이 없다. 어딘가 고층빌딩의 옥상에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옛날부터 높은 곳에 그리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했다. 늘 발치만 바라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웅, 책상 위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빈 속에 마신 몇 캔의 맥주로 희강은 낮잠을 잤다.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눈을 비벼서 애써 눈을 뜨고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오후 6시. 코인거래소 앱에서 희강이 가지고 있는 코인이 거래폭등으로 위험이라는 알림이 떴다. 거래소 지갑을 확인해 보니 코인가격은 70% 상승했다. 드디어 자신의 삶에 어둠이 걷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을 잔뜩 안고 밥을 차려 먹기 위해 주방으로 나왔다. 가스밸브를 돌리고 냉장고에서 갈비찜을 꺼내 끓이기 시작했다. 갈비찜이 데워질 동안 TV를 보기 위해 리모컨으로 전원을 켰다. 채널에서는 경제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흥미를 잃은 희강은 주방으로 가서 밥통을 열어 주걱으로 밥공기에 밥을 덜어냈다. 덜어낸 밥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을 때 TV에서 뉴스속보라는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보 내용을 전달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서 무슨 큰 사고인가 싶은 마음에 다시 거실로 나갔다. 현장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에는 번화가인 거리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검은색 중형 세단 차량이 인도를 넘어 1층 점포 유리창을 뚫고 반쯤 드러누워있었고, 아수라장으로 변한 점포 바깥과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네 , 방금 부천시청역 쪽에 위치한 도로에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인도를 습격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길을 가던 행인인 66세 여성 최모씨와 점포 내에서 식사를 하던 34세 남성 박 모 씨 그리고 운전자인 65세 임 모 씨가 크게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경찰은 주변 CCTV와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있는 중인데, 사고를 최초로 목격한 시민의 말에 의하면 전방 300M부터 갑자기 속력을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번사고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원인이 될 것이라는 소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 사고를.."


휘이익. 가스레인지에서 갈비찜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희강은 멍하게 팔짱을 끼고 뉴스를 보다가 주방에서 나는 소리에 사고지점이 자신의 동네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후, 저기 한동안 가면 안 되겠네."


그때 식탁 위에 있던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휴대폰 번호가 아닌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다. 스팸전화일 것 같아서 안 받을까 하다가 착신이 끊길 때쯤 늦게 받았다.


"누구세요."


"윤희강 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신데요?"


"여기 순천향대학교 부천 병원 응급실인데요. 최윤옥 씨 아드님 되시죠? 어머니가 지금 위독하세요. 지금 오실 수 있나요?"

 


[이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