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그냥 여기에 두고 가지 말아요.
초단편소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기보다 수많은 망각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나른한 오후 5교시 수업 후 쉬는 시간. 나는 4층 남교사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때 삐링, 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메시지는 내게 온 것이 아니었다.
왼쪽 위를 올려다보니, 화장지 케이스 위에 휴대전화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내 입가엔 흣, 하고 얇은 미소가 번졌다. 나도 빈번히 깜박, 그러니까. 내 마음은 곧 물기가 닿은 화장지처럼 연민의 감정으로 축축해졌다.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대로 놔두는 편이 주인에게 이로울 것 같아서였다. 재빨리 자기의 최근 동선을 그려 보고선 지금 이 순간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삐링, 메시지 도착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마치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저를 그냥 여기에 두고 가지 말아요."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4층에 3학년 교무실이 하나밖에 없으니, 분명 주인은 그곳에 있으리라. 나는 볼 일을 마무리하고 3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교무실에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혹시, 이 폰 주인 있으세요?”
나는 그 휴대전화를 공중에 높이 들며 말했다. 그러자 창가에 앉아 있던 여교사 P가 어머, 제 거예요, 하며 달려왔다. P는 내게서 휴대전화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어머, 어디에 있었어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요즘은 예전처럼 둘러댈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 이것도 망각의 일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