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있다,라고 해야 환영받는 사람일 될 것이다.
나는 없다,라고 하는 쪽이다. 그래서 대개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음이 닫힌 사람 취급받는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름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261-262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적은 없다.
지금껏 이해하기 위해 무진장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다만,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게 아니니까.
불가능에 대한 인식 후의 노력만이 가능을 아주 조금 가능케 한다.
사랑이 그렇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어딘지 거짓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