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용설명서 (5)
안녕하세요. 아무개 씨
나는 오늘 처음으로 누구일지도 모를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왜일까요. 그저 누군가에게 이야길 하고 싶지만, 재단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 일까요.
저는 요즘 삶을 바꾸는 것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전의 삶을 미워하기보다
조금 더 다정한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죠.
다정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일로써 그림을 그리기에 급급 하기보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오전에는 나를 위한 그림을 오후에는 다른 이의 마음을 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사실은 오전의 시간이 조금 더 즐겁기는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를 깨우고 물고기들과 아기 쥐 그리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어요.
그리곤 여러 기억이 담긴 화분에 물을 줍니다.
가끔 사람이 사는 곳보단 작은 테마파크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나지만
중앙에 서서 나의 보금자리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고, 나는 그것들을 지켜내고 싶으니까요.
지금은 문뜩 노래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다가 누구일지 모르는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황사가 하늘을 뒤덮고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오늘은 어딘가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사실, 오갈 곳이 없는 마음을 당신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미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지도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편지를 씁니다.
아무개 씨는 마음을 숨기는 편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감정의 충실한 편일까요?
저는 요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표현하고 행동하고 말을 하고 싶지만, 그것들이 저를 단면적으로 채우는 사람들의 시선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에 포장지를 덧대야 할까요? 포장지를 벗겨서라도
자글자글 주름진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라,라는 말이 맴돌지 모르겠지만 이게 무슨 걱정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가장 생각이 참 많이 드는 것이라 아무개 씨에게 여쭈어봅니다.
아름다운 포장지를 씌어 놓는다면, 사람들은 아름답다 이야기해 주겠죠.
포장지를 씌우지 않는다면, 같은 마음을 겪은 사람들이 이해한다 해주겠죠.
포장지를 씌우고 벗겨내 들어낸다면 놀라 도망가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무엇을 포장하고 무엇을 보여야 할까요?
포장을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자신에게 침을 뱉는 사람은 없으니까.
씌우지 않는 것 또한 감정에 매몰된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마음을 잘 아는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 중간 어딘가에 떠돌며 무엇을 선택할지
그리고 이것이 선택한다고 되는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요.
사실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무개 씨에게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었어요.
앞모습을 보고 싶은지, 뒷모습을 보고 싶은지,
다음에 또 편지 쓰겠습니다. 부디 안녕히 지내세요. 아무개 씨
23년 04월 13일 기록
요새 들어 자주 꾸는 꿈은
나를 두고 사라지는 가족들 꿈이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전화 걸기 두려워지는 꿈이다.
눈을 뜨고 2분 정도 충격에 휩싸인다.
2분을 버려진 기분에 나를 둔다.
오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먼저 연락하지 않느냐고 꾸지람을 들었다.
아빠에게 솔직히 말했다.
버려지는 꿈을 꾸었다고
마음이 은연중 무거워 그런 꿈을 꾸는 것이라고
잠도 잘 자고 잘 챙겨 먹으라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걸려온 지인의 통화
정신적으로 평온한데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말에
나는 반대라고 했다.
넌 늘 그랬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늘 그늘 진 사람이었을까
나에게도 작은 빛은 있었는데
나만이 아는 빛으로 남았다.
오늘도 까끌한 그늘이 목을 타고 내려온다.
22년 10월 07일 기록
아직 돋아나지 않은 씨앗이
화려한 꽃을 피우리라
무성한 나무가 되리라
하지만 정작 뿌리가 나고 싹을 틔우고
씨앗은 잡초였다.
라는 결말이 온다면 당신의 표정은 어떨까.
실망하고 돌아설까
괜찮다며 안아줄까
둘 다 아니더라도 ,
씨앗이었을 때에 설렘은 잊지 않았으면
22년 07월 31일 기록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취침 그리고 필요시
하루에 4~5번 약을 먹는다.
블로그에 약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내는 것은
숨길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싶지도 않지만
뭔가 기록해 두면 이것도 나중에는 숙성이 되어 빛이 나는 날이 올 것 같아서이다.
2년 전만 해도 아침 취침 약만 먹었었다.
그러나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쌓이는 불안감과
알 수 없는 고립감에 점심 약이 늘었다.
방금 쓰다가 기억났는데 내 약에 보탬이 되어준 이들이 몇몇 있긴 하다.
그리고 한 달 전쯤 저녁 약이 추가되었다.
이유는 아침과 오후 4시가 되면 밀려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약효가 4시간이에요"
소름 돋게도 내 몸에 돌던 약이 떨어져서 컨디션 또한 떨어졌다는 것.
부단히 약은 보조바퀴 같은 것이다 설명해 주는 의사 선생님께는 감사하지만
신체로 느끼는 나는 겁이 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약 먹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검은 파도 같은 것이
단전에서 목구멍으로 올라올 때
아, 약 먹을 시간이구나 하고 약을 삼킨다.
중간중간 다시 파도가 오를 때 필요시를 먹는다.
오늘도 아침 약을 복용하고 글을 쓰다 점점 책상 위로 엎어지는 나를 보며
무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되게 진실되고 예민하네라고
내 몸을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녁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런칭이 얼마 남지 않은 작품을 뜯어고치고
갑자기 흥미를 잃고 무력해진 나는 다음 작품에 대해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고 책상에 다시 엎드리고 만다.
아. 약 먹을 시간이구나.
22년 07월 25일 기록
이참에 오랜만에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고 보름 전 제주도에
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털어놓았다.
나는 어릴 적 제주도에서 할머니 손에서 커왔다.
너무 할머니가 뵈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어낸 다리들을
숨기려다. 내 한숨 하나에 들켜버렸다.
제주 친척 집과 우리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살가운 내가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자부했는데,
생전 처음으로 친척 오빠에게 자신의 아이가 먹다
떨어진 밥풀을 나에게 주워 먹으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리고 그 농담이라는 말로 치부하며 웃는 그에게
네?라고 되물었을 때.
"아 우리 집 개를 키워서."
라는 답변을 듣고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나오지 못했던
치욕스러웠던 그날
"너는 일정한 수입이 없지?"
어엿한 사회인이 된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닌 나에게
피식 웃으며 나를 폄하하듯 쳐다볼 때
그 사실을 어른께 전하고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내가 예민하다고 했던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명치가 욱하고 저린 그날
그래도 나는 이제 13살의 내가 아니라서
무례하게 구는 친척에게 한마디를
날렸지만, 그게 아버지에게 해가 될까
다음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건네고
답변을 받지 못한 그날.
맞다, 10년 아니 20년 전까지 그들이 우리보다 형편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자신들의 아래라고 생각하는
정당함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서울 상경 전 할머니 산소 위치를 모르는 나는
그들을 찾아갔다. 방법이 없었다.
그날도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를 운운하며
먹던 밥을 목구멍에서 넘기지 못한 채
나오는 눈물을 욱여넣게 했던 친척 어른
어린 시절에는 네. 네. 알겠습니다 만 하던 내가 이제는 말이 많아졌다며
추억이랍시고 꺼내는 무식함.
어린아이가 딱딱하게 굳어 대답만 하는 이유를 모르는 머저리 같은 생각
할머니가 입원하시던 날 그 집에 맡겨졌을 때.
제발 나를 데려가 달라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던 때.
그때 나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10년 하고도 절반이 더 지난 나는
그럼에도 나는 그 기억을 다시 한번 다시 한번이라는 습관으로
이번에도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
굽이진 산길을 깊게 들어가야 하는
할머니 산소에 혼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 것은
말이 좋아
할머니를 이젠 내가 스스로 찾아간다도 맞지만.
다신 당신들을 찾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커버린 나는 당신들이 내뱉는 말에
목이 메지 않을 것이고,
당신들이 행하는 일에
무관심해질 것이다.
보름 동안 목구멍으로 삼키다.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은 이유는
나 애쓰고 있다고, 아버지를 위해서
알아달라고
어리광을 부린 것이다.
22년 07월 03일 기록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네
그대 론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몇 개의 다리를 끊었네
너와 난 잠투정을
부리는 억양이 달라서
농담밖에 할 게 없었네
노래가 되지 못했던
이름들이 나뒹구는
거리에 내 몫은 없었네
오래전에는 분명
숲이었을 탑에 올라가
매일 조금씩 모은
작은 슬픔들을 한 줌 집어
멀게 뿌렸어
행여나 나를 찾진
않을까 목을 길게 빼도
아무런 연락도 안 오네
쏜애플_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