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용설명서 (4)
잠에 들기 위해서는 첫째, 잠이 오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잠에 들기 위해서는 잠이 들기 위한 것을 잊어야 한다.
고르게 숨을 쉬고 미간에 긴장을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모르는 사이 새벽을 건너뛰게 될 것이다.
두 달 전쯤 복용하는 약들을 끊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듯, 불면증 약 또한 먹지 않았다. 잠에 드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다시 병원을 예약하고 찾아가는 것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짓이다.
분명히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얼마 전 위스키 한 병을 구입했다. 잠이 오지 않을 걸 예상했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산 것이다. 병원에서는 술을 매일 먹는 것은 안정제를 매일 같이 들이붓는 것과 같다 했다. 악순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술을 찾는 것은 첫 잔은 고역이지만 두세 차례 잔을 넘기다 찾아오는 모든 게 고요해지는 순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분명 적을 말들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새벽인 지금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 술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블로그를 꺼내 들었고 나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술을 어쩌다가 찾게 되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 가득 찬 가구들이 부담스럽고 높은 천장이 두렵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아침에 생소하게 비추어질 때 나는 가장 겁을 먹는다. 최근 따라 인간관계도 잘 굴러가지 않았고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하여 느낌표 보다 물음표를 가장 많이 찍었다. 나는 언제쯤이면 마음 정도는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사실상 마음만 무겁다면 다행이겠다.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몸으로도 통각이 느껴지니
나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할퀴면 명치가 뜨겁고,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질 때는 등 뒤가 따끔 거린다. 할 일들이 쌓여 불안, 걱정이 밀려올 때는 두통과 두근거림 메스꺼움이 찾아온다.
먹은 게 없어도 토가 나올 정도이니 주변에 걱정을 사곤 한다.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통각일 테지만 나는 이러한 신체적 반응에는 잼병이어서 아직도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를 또 하자면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너무 쉽게 좋아하는 것 같다. 뭐 쉐도우 복싱이나 하며 뭐든 날이 선 자세보다 나으려나,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나는 작은 호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앞서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문장은 여기서 출발되었다. 별 뜻 없는 안부에도 의도가 없는 행동에도 나는 잘 감동 먹고, 잘 요동친다. 그래서 잘 데고 다친다.
내가 스스로 자처하여 상처받는 꼴이라 가끔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원래 다가가던 거리보다 조금 더 짧게 조금 더 얇게 뒷걸음을 치지만
정신 차려보면 또 제제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다. 서랍장에 꼭꼭 숨겨 놓았다 생각했는데, 꼬리는 항상 나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튀어나와 곤란하게 만든다.
다시 술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살짝 취기에 기대게 되면 조금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 찾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이것 또한 근원지를 찾자면 생각보다
사람을 쉽게 좋아하는 본성에서 나오는 걸 지도 모른다.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친근하게 사람을 대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는 지금 위장이 꼬이고 꼬여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속이 쓰리지만
그럼에도 술을 집어넣고 싶은 건 누군가에게 대화를 걸고 싶어서일까. 사실 짐작은 되지만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24년 08월 23일 기록
사람이 엄청 붐비고 에너지를 가득 내지르는 곳에 머물다 오면
내 안에 배터리는 깡통이 된다.
엊그제 큰 규모의 콘서트인 흠뻑쇼를 다녀왔다.
운이 좋게 취소표를 잡아 여유를 부리며 예매한 일은 이미 까마득하고
신난다 신난다, 연신 말은 했지만
나가기 15분 전까지도 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갔다가 오면 분명 좋은 에너지를 받고 올 거야! 라는 생각으로 외출에 나서고 돌아온 후 나는
방전이 되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평소에 4시간 이상 못 자던 잠을 하루하고 반나절 넘게 이룬다.
꿈자리의 연속이었다. 뒤숭숭한 꿈을 꿨다가 눈 뜨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한 꿈을 꿨다가.
갑자기 무서워지는 꿈을 꿨다가,그렇게 긴 시간을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정신은 이미 앞서나가고 몸은 아직 선잠을 자는듯하다.
그렇게 한없이 누워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눕는다. 팔과 다리가 저릿하고 감각이 없는 걸 보니
아직도 꿈속을 혼자 헤매는듯하다.
그렇게 책상에 다시 엎드린다.
침대에서 기어 나와야만 할 것 같았다.
미뤄둔 일 미뤄둔 가사 일 또는 나에게 자꾸만 일어나야 할 중요한 목표를 정해주지만 내 몸은 아직도 꿈속에 있다.
현실과 꿈속의 비중이 치우쳐진다면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 내가 많아질수록 현실의 나는 비중이 작아지는 것이
뭔가 비현실적이지만 계속 잠에 들었다면 현실의 나는 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뜨고 옆에 보면 나와 같이 지내는 반려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다.
득달같이 달려와 왕왕 물어대는 고양이는 죽은 줄 알고 놀랐다고 잔소리하듯이
내 팔뚝을 깨문다. 내가 너무 고요해서 그 고요함에 불안했을 녀석들에게
나의 손길을 건넨다.
나는 일어났다고 괜찮다고 말해본다.
22년 07월 17일 기록
나는 지금 내가 머무는 집 창문의 전경을 좋아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작업시간엔
떠오르는 해로 하늘이 주황빛 또는 핑크빛을 띠었다.
낮에서 밤으로 가는 시간에는 멀리 보이는 큰 교회의 십자가가 빛을 발했고,
나는 복층 계단에 앉아 그 풍경을 보며 믿지 않는 종교에게 기도를 빌어봤다.
그런 내가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버렸다.
흘러오는 빛이 싫었고, 시간이 흐름이 느껴지는 게 싫은 모양이다.
더 더 더 깊숙한 곳으로 숨고 싶다.
나가고 싶지 않다. 보이고 싶지도 않다.
얼마 전 해변 그림을 찢었다.
각오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웃긴 것은 그것을 다시 내 손으로 붙인다.
예쁜 그림은 찢을 용기가 없다던 나는
또 무언가에 떠밀려
또 무언가에 일렁이며
용기를 내어 찢어 본다.
찢는다 한들 쉽사리 모든 게 끝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22년 7월 14일 기록
글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의 절단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요즘 들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꾸준히 이곳에 글을 남기고 있다는 것.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라는 것이 저만치 도망가는 바람에
일어났다, 앉았다.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스탠드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언가 답답한 모양이다.
오늘은 어젯밤을 새 버려 아침에 내원을 늦어버렸다. 그때부터 하루가 조금 꼬인 것 같다.
늘 걸어서 가던 내원 길을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를 타고 가면 편안하지만 뭔가 기계적인 일이 되는 것 같다.
너무 쉽게 가고 너무 쉽게 돌아온다. 두툼한 약봉지를 들고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집에 와서 사물함에 넣어버리면 그만이다. “우와 이 주 동안 아주 배부르겠네” 하며 펼쳐 보지만
왜 먹어야 할까
잠시 내려놓고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여전히 내 팔에는 금붕어가 헤엄친다.
보이는 상처는 끔찍해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상처는 혼란스럽다.
아물긴 한 거니
벌어진 곳은 좀 어때
다친 나조차도 이게 아픔인지
모두가 그러고 사는 건지
내가 엄살인 건지
의사 말대로 어린 시절 기억이 날 가두는 건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속을 헤매어도 길은 나오지 않는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다.
폐까지 물이 차는 기분이 든다.
물이 차오르다 쏟아진다.
차라리 쏟아지는 게 낫다.
쏟아지는 건 비워지는 것이니까
이내 몸속에 수평을 맞추게 되고
다시금 차분히 돌아오니까
쏟아내는 일은 이제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아 진다는 것.
익숙해진다는 것
근데 가끔은 이것까지 기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고이고 떨어지는 것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년 07월 08일 기록
애매하게 말할 바엔
솔직하게 말해줘
말 안 해도 안다 하는
소리는 안 할 거야
지겹다는 말은 안 해
몇 번이고 들어도
뭘 말하든지 나는 네게
대답을 해줄 거야
Don't say no
네 얼굴은 웃고 있지만
Don't say no
어색한 거 너도 알잖아
설_Don't say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