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용설명서 (3)
여름이 싫다. 여름에 태어났으면서 여름에 약하다. 들이마시는 공기는 무겁고,
다시 내 속에서 내뿜어져 나올 때는 뜨겁다. 별것 아닌 것에 짜증이 나고,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미련은 짙어진다.
이미 오래전 버렸음에도 다시 쥐고서 갖다 붙이는 것은 오만인가
나에게 과거의 나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을 하는 이들이 늘었다.
매년 새로운 모습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 어디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오류가 나를 집어삼킨다.
단지, 겉치레 어느 구석이 바뀌었을 뿐이다.
왜 나는 이것에 대해 3년간 지옥같이 나를 미워하고 욕하고 몰아세우며
몸을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왜 나는 나를 도려내고 싶을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는 나를 차마 도려내지 못한 채, 그 어느 날에는 앙상해져 있을 것이라는 것
돌아가 달라는 요청을 보낸 이들에게 원하는 답은 절대로 주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눈빛이 바뀜에 따라 경멸할 것이고, 치를 떨 것이다.
당신들이 건네는 말이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말인가, 당신들의 눈을 위함인가.
스스로도 그것 또한 분명히 하지 못하며, 멀쩡히 나를 보지 않는 그들은.
너를 위한 말이야, 너는 행복하지 않아, 너는 말라가야 해.
그리고 생각하겠지. 자신은 타인을 위해 마음을 썼다고.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겠지. 당신들이 하는 짓은 화분에 들끓는 물을 들이부어 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돌아간다면?
보기에 좋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안은 구더기가 파고드는 썩은 고기 같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앙상하고 썩은 나를 안고
달라진 다정한 눈빛을 보낸다면, 그것 또한 다른 의미로의 웃음이 날 것이다.
네가 안고 있는 것은 썩고 썩어서 시궁창 냄새가 날 텐데,
그 시궁창 냄새마저 알아차리지 못하고 등신같이 헤벌쭉할 텐데,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바보 천지 같은 행복을 보이겠지.
박제 동물처럼 속은 텅 비어서 나를 찾을 때마다 텅-텅- 소리가 나겠지.
24년 08월 11일 기록
하루에 네 번, 다섯 알에서 여덟 알.
왜 먹어야 할지, 어떤 용도인지 아는 것도 관심 없이
무작정 삼킨 4년.
단 약시 부작용을 몸으로 겪어 놀라 묻지만
단 약시 부작용은 없다던 의사.
고개를 끄덕이다. 불현듯이 밤에 찾아온 떨림과 불안에 휩싸여
비대면 진료를 받고 홀린 듯이 택시를 타고 약국을 찾아 헤매고
모르는 동네 모르는 길가에 펑펑 눈물을 흘렸다.
아픔에 무딘 나는 이것이 아픈지 아닌지,
약을 먹고 나서야 깨닫는다.
단약에 부작용은 있었고, 남을 탓하기엔 너무나도 나에게 무감각했기에
그저 나에게 미안할 뿐, 무감각해서 무감적이게 생각해서
미안해.
무감각적 태도로 생긴 늘어난 체중
무감각적 태도로 생긴 다한증
무감각적 태도로 생긴 몸에 아가미.
잘못 삼킨 약의 댓가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에 아가미를 만들고,
태어날 때부터 불행했다던 말을 듣고 길가에서 울고
나의 아가미 위로 올린 타투에 유아틱 하다며 웃던 의사.
당신을 오로지 믿어, 나에게 무감각 해진 나의 태도에
약물 의존도만 높아져가고 알코올까지 들이붓는 나에 태도에
자신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나를 씻기고 또 씻기고,
23년 05월 01일 기록
감정 레이더
언제부터 내장되었는지는 모르겠고,
어릴 적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남긴 것 이라는데.
때로는 마음이 편한 감지가 있고 불편한 감지가 있다.
뻔한 촉같은 것들인데. 분명한 오차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의존하지는 않는다.
식사 자리나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
단순히 날 괜찮게 여기는지 불편해하는지는 단 몇 마디에 감지되는 기분이 있다.
그것이 고요더라도 느껴진다.
나를 싫어하는 듯한 이에게는
거리를 두어주고 사라져 주거나
나는 당신에게 무해하다고 제스처를 은연중에 취한다.
마치 개의 꼬리 같은 행색이다.
꼬리를 내려 쳐지거나
들어내어 흔들거나
꼬랑지를 감추고 도망치거나
22년 08월 17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