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용설명서(2)
주인공이 작가인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첫마디는 고향으로 내려와서 백화점 직원을 하면 교육을 시켜주고 점장까지 될 수 있다며
작가를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9개월이다. 나는 데뷔한 지 12개월도 안되었고 심지어 완결이 코앞이다.
조금만, 서른까지 믿어줘 아직 만 나이 28세인데? 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허기짐에 목구멍이 일렁이는 것처럼 알사탕이 목에 걸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 안에서 데굴데굴 제자리를 구르는 것처럼
뭔가가 걸려 목구멍에서 내려가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삼켰다.
내가 잘못하고 있나, 내가 아버지를 더욱더 고단하게 만든 건가
그래도 이제껏 착한 딸로 살아오며 사고하나 치지 않았는데,
슬픔을 삼키려는 나를 슬픔이 삼켰다.
지하철 구석 자리에 간신히 앉았지만 편하지 않았다. 내려서 또 예전처럼 공중 화장실에서
울다 나올까. 아버지는 항상 나를 공중 화장실에서 울게 만든다. 3년 전 마트 알바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집이 아닌 밖은 울 곳이 공중 화장실 밖에 없다.
집에 얼른 돌아가고 싶어 나를 삼킨 슬픔을 내가 도려 삼키려 했지만 그건 다시 막혀 눈으로 뿜어졌다.
단장하고 나온 얼굴은 벌게지고 붙인 속눈썹은 너덜너덜 떨어졌다. 누가 볼까 땀을 닦는 척
눈에 뭐가 들어간 척을 했다.
아버지에게 카톡을 남겼다. 전화로는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고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는 답장을 못하시겠지.
일방적 통보 방식으로 내 마음 그리고 내가 견뎌온 것을 차례대로 써내려 보냈지만
메시지에 1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아버지는 오늘 고단하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도 삼키겠지, 걱정과 슬픔을
그리고 삼켜지겠지 걱정과 슬픔에게
24년 2월 22일 기록
1)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은 “사람을 믿지 마라”입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제가 쉽게 믿고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저는 의심이 많고 가식도 많고 때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도 합니다. 그리고 속았다고 한들 애초에 사람을 미련가 지지 않을 정도로만 대했기에
인간관계로 인한 생채기가 나는 일은 이미 애초에 끝이 났다고 오만을 떨 수 있는 것이겠죠.
2) 그저 사람들 말에 수긍만 하는 것은, 또는 순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지루한 대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나의 의견은 숨긴 채 수긍으로 대하면 상대는 더 이상의 할 말이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팔랑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사실 그 또한 나의 가면이라는 것을 들킨 적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가면을 쓰게 되면 여러모로 크나큰 스트레스를 피하게 됩니다. 단점은 나에 대해 의문점만 커져가는 것이라는 게 문제 이긴 합니다.
처음엔 가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양한 가면들이 생존 방식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나약하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3) 의견은 듣지만 중대한 선택은 남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조금 더 어릴 때 선택을 맡기는 일이 종종 있어왔는데, 결과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였을 때에는
양 갈래 중 한쪽으로 선택하게끔 등을 밀어 놓고는 ‘난 그저 손만 댔어’ 식의 대답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결국엔 중대한 일을 남에게 의지한 제가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난이 섞이고 나를 대하는 표정에서 혐오스럽다는듯한 표정을 보았을 때를 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최근 너의 생각에 합리화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직도 그 의미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 글조차 합리화 일지도 모른다, 그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나의 생각에까지 미쳐 버렸다.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사실상 그때 그 말은 무슨 의미였느냐 묻는 것이 빠르겠지만 묻지 않는 것은 나의 생각의 합리화의 습관은 어느 부분인지 궁금증은 생기지만
어느 부분인지 듣는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
5) 이따금 나의 우울이 좋고 나의 서글픔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마구 분출하고 토로하고 감정을 나누고 싶다, 공감을 받고 싶다 란 마음에 주변인들의 걱정을 산 적이 있습니다.
최근 그때의 나를 보는 듯한 이를 보았습니다. 만남이 끝나면 언제든 곧 죽을 것 같이 보이는 사람. 집안에는 수저세트 하나 접시 하나 그저 생존만을 위해 그리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한 사람.
표정만 보아도 주변인의 걱정을 사게 될 사람. 그 사람 얼굴에서 재작년의 저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떠들었고, 기분에 대해 떠들었고, 약점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토닥이며 들어주고 그 사람이 떠났을 땐 애석하게도 순수하고 바보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내가 가진 모든 패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인 것을.
조금 더 내 우울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주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른 가면을 하나 더 만들어 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4년 2월 14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