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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덴티 Aug 19. 2024

어느 날, 우울한 금붕어가 찾아왔다.

작가의 말

금붕어를 키워보신 적 있나요?

반갑습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 제이덴티입니다.  

웹툰을 쓰고 그리다가 뜬금없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에만 남기기에는 한풀이가 안되어서 일까요?


 혹시 금붕어를 키워보신 적 있을까요? 저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실제 금붕어를 키우는 것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금붕어를 위한 팔뚝에 작은 보금자리


 책 제목에서 말하는 금붕어는 책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살아있는 금붕어는 아니다. 내 오른쪽 팔뚝 안쪽에는 금붕어와 나의 필명 타투가 있다. 의미는 "나만 물속에 있는 것 같아” 인데 여기서 말하는 금붕어는 흔히들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우울을 금붕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른 이들은 블랙 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던데 나는 내가 물속에 있는 기분이 들 때마다 이 금붕어를 보는 것 같아 이름 붙였다.   

왜 오른쪽 팔에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림 그릴 때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앙증맞은 녀석들은 이제는 조용한 위로가 된다. 누군가 내가 감정적으로 힘듦을 알아주기 원했지만 감정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말하면 눈치가 보였다. 과한 위로라던가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적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기 일쑤였다. 어쩌면 감정적일지도 모른다. 우울한데 어떻게 텐션을 유지하겠냐라고 되묻고 싶다.  




금붕어의 습성은 담수어로서 작은 용기 안에 장기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식성은 잡식성이라는데, 그래서 내 몸에 들어왔나 싶다. 이 좁은 내 몸에서 이것저것 나의 마음을 먹어치우니 말이다. 평균 수명은 20년이라는데, 과연 내 안에서는 얼마나 살아 숨 쉴까. 나는 금붕어 타투를 새기기 전에 하나도 타투가 없는 도화지였다. 생각보다 타투를 새기자 라는 결심은 어렵사리 오래동안 고민한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2022년 6월 제주에 일주일정도 혼자 원고 작화 작업을 하러 내려간 적이 있다.  숙소는 논밭이 보이는 통유리 창문이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엄청 큰 새가 날아다니기도 했다. 쾌적하고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물속 안에 있었다. 이유는 나중에 더 설명이 되겠지만 가깝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날이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 생각하던 나는 타투를 하기로 결심이 섰다.




타투를 하기로 결심한 마음을 설명하자면 나에게는 몇 개월 되지 않은 자해 흉터가 있다. 22년 3월쯤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타지에 홀로 남은 나는 죽고 싶었다. 아무도 남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초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언제까지 약을 먹으며 슬픔을 재단해야 하는지, 재단한다면 어느 길이까지 잘라내야 하는지, 슬픔이란 감정은 없앨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며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나는 에이포 용지와 볼펜을 책상에 두고 1층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주를 세병 들고는 계산대에 놓는데,

편의점 주인과 아저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저씨는 말했다.




"내일이면 세상이 바뀌겠네요!"




 아마 다음날이 대통령 선거 개표일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대화가 오고 갔겠지만. 나는 죽으려 내려왔는데

세상이 변하는 날이 내일이라니, 나는 애써 웃으며 그렇네요.라고 대답했고 소주를 사들고 오며 울었는지

무표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주 세병을 들이켜고도 여러 방법을 실패한 나는 인터넷 검색을 했고 피를 빼라는 답을 찾았다. 뭐에 홀린 듯이 칼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살기도는 낭만적이지 못했다. 눈을 질끔 감고 그어버린 왼쪽 손목은 눈을 떠보니 떡하니 벌어져 있었고 듣도 보도 못한 것이 튀어나올 기세였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짐승처럼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손목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웃기다. 죽으려 그은 것을 살고자 아등바등 쥐고 있는 것이. 난 메디컬 드라마도 잘 못 볼 정도의 개복치다. 그런 내가 실제로 사람의 살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였으니. 드라마에 표현되는 죽음과는 다른 생동감이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내가 키우는 고양이 도로시가 날 보고 있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도로시에게 괜찮아,괜찮아 만 연신 외쳐 대다가 나는 그대로 누워 버렸다.  삶은 참 끊어내기 어렵다. 나는 죽음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혈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흐르다 잠들고 죽을 운명이면 죽겠지 하고 시트가 붉게 물들게 놔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먼저 내뱉은 말은

 "젠장"이었다. (사실 순화한 거다) 나는 죽지 못했고 흉터를 얻었다.




직업이 프리랜서라 일을 하다 쉴 때면 누워있는 편인데, 핸드폰을 만지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때 보이는 상처는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자꾸만 그날 그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고개를 내두르게 될 만큼 끔찍했다.

 (그러니 이 글은 자해를 두둔하는 글은 아니다.)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고 징그럽다. 그렇게 2개월 지났을까 나는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였지만 긴팔을 입고 혼자 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참 즐거워 보였다.

 아티스트들 중 몇몇은 몸에 작거나 큰 타투를 새기고 머리를 흔들며 시원하게 노래를 불렀고 손을 펄쩍 들고뛰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도 타투가 보였다. 그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때 나는 나에 흉터에 그림을 새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따라 하면 자유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흉터 치료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권유도 받았지만 지워버리기보다 그림으로 채우고 싶은 고집이 있었다.




제주에서 이때를 떠올리며 타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백지의 몸이라서 망설여지기는 했다. 하지만 또 다시 자살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또 실패한다면 아가미 같은 흉터만 늘어갈 텐데 효율이 없다 생각했다. 또한 숙소에서 자살이라니 그건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차라리 죽지 못할 고통이라도 느끼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그림이라도 새기자는 마음이 들었다. 한창 도안을 고르는데 꼭 내가 그린 그림으로 새기고 싶었다. 원래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 인지 몰라도 의미가 없이 멋지기만 한건 담기 싫었다.

얼마 전 10cm의 10월의 날씨를 들으며 그렸던 금붕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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