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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을 볼 때, 엄마도 딸을 본다.

엄마의 눈에 비친 딸

by 서다움

딸아이가 세 살, 네 살 즈음이었다.

밤에 깊은 잠이 들고 한두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갑자기 놀란 듯 깨서 울기 시작하곤 했다.

눈은 감긴 채로, 겁에 질린 듯 울부짖으며 나를 붙들던 아이.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맑게 웃곤 했다.


야경증.

의학적으로는 잠의 한 주기에서 다른 주기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불안 반응이라고

의사에게서 설명을 들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픈 것도 아닌 아이가 왜 매일 밤 울고 또 우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 밤의 고단함과 당혹스러움은 엄마인 나 혼자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오랜만에 친정엄마께 아이를 맡겼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아이는 울었고,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한 엄마는 달래다 지쳐 결국 아이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왜 매일 엄마를 힘들게 해, 얌전히 자!”


그 순간, 나는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화를 냈고,

나는 그런 엄마가 야속했다.


그날 밤, 결국 아이를 업은 채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딸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할머니 품에 안겨 웃고 있었고,

엄마도 다정하게 아이를 꼭 안아주며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애는 어젯밤 기억도 못 하고 진짜 힘들어했는데… 왜 그렇게 화냈어?”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조용히 말씀하셨다.

“넌… 네 딸이 가슴 아프지?

나는… 내 딸이 더 가슴 아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멈춰 섰다.


딸을 품에 안은 채 울던 내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며 또 다른 딸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두 엄마는 밤새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함과 애틋함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딸을 바라보았고,

엄마는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품에 안은 나를,

엄마는 가만히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딸을 볼 때,

엄마도 딸을 본다.


세대를 이어 안아주는 사랑,

그것이 때론 우리가 나아가는 힘이 된다.


세월을 건너 전해지는 그 품의 온기 속에서

나는 비로소 부모다움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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