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한 통에 담긴 마음
부모다움, 집이라는 교실
부모가 된다는 건
매일 아침 새로운 교실에 입장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 길.
그러다 보니 종종
아이보다 내가 더 서툴고,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말없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선생님이 되어주었습니다.
부모다움 편은
‘엄마’라는 이름 아래, 또 부모가 되어 나의 부모를 다시 바라보며
조금씩 깊어지고 단단해져 간
저만의 부모다움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아프게 말하고 더 아픈 사람
경제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시절,
나는 어린 딸아이와 함께 친정엄마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출장도 잦았고, 아이도 어렸고,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었다.
생활비를 넉넉히 드릴 수 없었기에, 말 그대로 몸만 얹혀 지냈다.
그런 나를, 그리고 어린 외손녀를 따뜻하게 품어주시던 엄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9살 딸아이가 샴푸를 너무 많이 쓴다며 엄마가 큰소리로 꾸짖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 너무 죄송했다.
나 때문에, 이 집에 살게 된 것도, 경제적으로 충분히 도와드리지 못한 것도,
모두 나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 열심히 일하자.
딸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샴푸를 조금 짜도 충분히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딸아이와 나는 독립해 나왔다.
이제는 샴푸를 한 움큼 짜 쓰던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끔 친정집에 들르면,
팔순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샴푸를 몇 개씩 내 가방에 챙겨주신다.
“이건 어디서 났어?” 물으면 늘 대답은 같다.
“선물 받았어.”
거절해도 소용없다.
돌아서면 이미 가방 속에 몰래 넣어져 있다.
어느 날 또 샴푸 몇 개를 챙겨놓은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툭 말했다.
“엄마, 왜 이래. 샴푸 필요 없다니까.”
그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샴푸 아끼라고 저 철없는 걸 구박해서… 그게 가슴이 아파. 늘 그게 걸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덕분에 아이가 잘 자랐어. 고마워.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혼자 그러셨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KTX 안.
가방 속 샴푸를 꺼내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부모는 아프게 말하고, 부모가 더 아픈 사람이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도 아이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아픈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상처는 아이에게 남고,
아픔은 부모에게 남는다.
나는 아직도 부모다움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