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다움을 다시 배우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나는 부모였고, 보육시설 현장 실사단이었다.
그날 나는 교사다움을 다시 배웠다.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까운 친인척도, 이웃도 없던 때였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동시에 직장생활까지 감당해야 했던 나는 늘 시간에 쫓겼다.
그날은 출장 일정으로 평소보다 30분 늦게 아이를 데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에 미리 양해를 구했고, 내심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우리 딸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후 4시면 귀가하는 상황에서도
늘 5시 반, 때로는 6시까지 남아 있는 아이였다.
보육시설 현장실사를 다니던 나는 어린이집 운영 시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부모의 동의를 받아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곳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어린이집에
죄송한 마음을 안고 아이를 맡겨야 했다.
그날은 6시 반이 넘어 도착했다.
겨울임에도 어린이집 내부는 숨이 막힐 만큼 따뜻했고,
아이는 코트와 목도리, 장갑, 모자까지 모두 착용한 채 현관문 고리를 잡고 혼자 놀고 있었다.
“엄마!”하고 반기는 아이의 목소리에 안도하면서도,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이미 코트를 입고 핸드백을 멘 채,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퇴근이 늦어진 선생님께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에,
기차역에서 급히 산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고는 아이와 함께 문을 나섰다.
문밖을 나선 뒤에야 아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털모자 속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오래 저 옷을 입고 있었던 걸까….’
집에 도착해 옷을 벗기니, 내복까지 축축히 젖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내가 자리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 아이가 혼자 더웠을 시간,
그리고 누군가가 조금만 더 살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교사들에게 조력하는 컨설턴트가 되었다.
나는 현장의 선생님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엄마를 맞이하고,
엄마도 따뜻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바로 교사다움 아닐까요?”
그날의 경험은 나를 오래도록 가르치고 있다.
교사다움은 거창한 교육 철학이 아니라,
아이 한 명의 체온을 살피는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