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살아오며 나는 늘,
내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학생 시절엔 반장을 맡아 친구들을 이끌었고,
각종 상을 휩쓸며 노력의 결과를 확인했다.
교사가 되었을 땐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신뢰받았고,
입소문만으로 원아가 들어오는 유치원을 운영했다.
새로운 꿈을 품고 들어간 지금의 직장에서도
묵묵히 일하며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항상 결과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따뜻한 격려가 따라온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심은
때로 오해로 돌아왔고,
좋은 뜻으로 아이디어를 나누어도
“그렇게까지 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왔다.
무심한 말, 차가운 시선,
기대하지 못한 벽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래도 나는,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었고
틈틈이 강의를 들으며 메모했다.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천에 옮겼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정말 죽을 만큼 뭐든 해봤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다운 방식으로.
교사로, 원장으로, 컨설턴트로,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살아오며
나는 어느새 ‘나다움’을 놓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조차
두려워진 채로.
이제는,
무대 위의 박수보다
무대 뒤편에서 흘린 땀과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꺼내려 한다.
진심을 다해도 박수받지 못했던 순간들,
조용히 흘려보내야 했던 마음의 말들.
그 안에도,
내 ‘나다움’은 분명히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무심한 말 한 마디에
며칠씩 잠을 뒤척이기도 했고,
차가운 시선에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안 되는 걸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나약함’이라 몰아붙이며
억지로 털고 일어나려 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순간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심이었기 때문에 아팠다는 것을.
나는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대신,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간을 들여 내 마음을 살펴야
비로소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회복의 속도 또한,
바로 ‘나다움’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괜찮다’고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
괜찮아지기 위한
시간과 쉼표는
나 스스로에게 허락해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최선을 다한다.
아픈 말이 날아와도,
비어 있는 박수 앞에서도.
나다움은, 때때로 고단하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켜주는 건,
바로 그 ‘나다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