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끝, 맑은 눈동자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교사 3~4년 차 무렵,
우리 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하루 종일 자동차를 줄 세우는 놀이를 반복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선풍기 앞에 서서 오랫동안 집중하듯 쳐다보기도 했고,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안아주려 하면 밀어냈고,
다시 혼자만의 세계로 돌아가곤 했다.
친구들이 다가오면 자동차 바구니를 들고
구석으로 이동해 또다시 줄을 세우며 놀았다.
요구는 늘 울음으로 표현했고, 말은 하지 못했다.
분명 또래와는 다른 모습이 있었지만,
그 아이의 눈은 참 맑고 예뻤다.
나는 경력도, 경험도 부족한 교사였다.
많은 고민 끝에 원장님에게
아이의 발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전문적인 평가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원장님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이후,
학부모 상담 기간이 찾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사 부부인 부모에게
아이의 발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부모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아이 아빠도 여섯 살에 말문이 트였지만 지금은 의사가 됐다”며
어떤 판단도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그 아이는 얼마 후 퇴소했다.
나는 원장님의 눈치를 보며 1년을 조심조심 보냈다.
‘내가 아이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사에게서
그 아이가 집 근처 발달센터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의사도, 발달 치료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고,
부모와 진심으로 나누며,
하루라도 빨리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성이 다르더라도 행동은 학습될 수 있다고,
천천히 돕다 보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사실, 두려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두려움과 갈등, 책임과 미안함 사이에서 흔들렸고,
시간이 흘러서야
내가 했던 선택들이 의미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전문가의 진단을 받든 안 받든,
발달이 빠르든 느리든,
결국 그 아이들은 ‘유치원’이라는 공간에,
그리고 ‘나’에게 오게 된다.
그래서 나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후
나는 예전의 나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들을 돕기 위해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하며
그때 스쳐간 수많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아이는 내게
두려움을 지나 성장으로 향하는 길을 남겼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지금도,
조용히 배우며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