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랑
중학교 2학년 아이가
“학원 다녀올게요.”
밝게 인사하며 집을 나섰다.
늘 있던 일이었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보내주었다.
그런데 그날,
해가 지고 밤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는 꺼져 있었고,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결국 경찰에 연락했다.
위치 추적 결과,
아이는 이사 오기 전 살던 지역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되었다.
수색은 그 지역 경찰서로 이관되었고,
경찰과 함께 불 꺼진 골목과
이전 친구들의 집을
하나하나 돌아다녔다.
다행히,
한 친구의 집에서
아이는 무사히 발견되었다.
아무 일 없이,
그냥 거기 있었다.
그 거리는
무려 100킬로미터.
혼자서,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그치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고민했다.
내가 뭘 놓쳤을까.
뭐가 부족했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해 보니
경제적 사정으로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아이는
적응할 만하면 전학을 가야 했다.
어느 날,
전학을 앞두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왜 나한테 허락도 없이 이사를 와?
왜 그래야 해?”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저 대답을 회피했다.
그날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를 재우고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한참을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용기 내어 물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가출 한 번 해보는 게
버킷리스트였어.”
허탈했다.
하지만, 안도감이 더 컸다.
아이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단순하고,
때로는 더 무해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늘 더 잘하려 애쓰지만,
아이의 삶은
종종 우리의 예상 밖에서 자란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
부족한 게 아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며 생각한다.
묻기보다 기다리는 것,
책망보다 다독이는 것.
그게 바로,
부모다움이란 걸.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렇게 부모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