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리더다움은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운다
나는 청탁금지법 교육을 반복해서 받는다.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음료 한 병조차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기에 하루 종일 일과를 함께 하더라도
아이들과 같은 식단으로 점심을 먹는 정도만 가능하다.
때로는 현장에서 식사 준비가 어려운 경우
김밥 한 줄로 식사를 때우거나,
아예 빵이나 쿠키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오지나 도서 지역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엔
아이들 식판에 정성껏 담아내어 주시는 식사가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지 모른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어느 날,
기차 시간 때문에 너무 일찍 도착해
편의점 하나,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을 헤매고 다녔다.
춥고 발은 꽁꽁 얼어붙었고,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용기 내어 어린이집 문을 두드렸다.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은
“이런 곳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몸도 마음도 함께 녹아내렸다.
그날 점심시간,
아이들과 같은 식판에 반찬을 담아주시며
“국은 아이들이 델까 봐 식혀줘요”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 식판엔 국이 없다.
잠시 뒤,
원장님이 조리실에서 따뜻하게 데운 국을 따로 가져다주셨다.
정말... 따뜻한 국물이었다.
작은 배려였지만
그날 나는 그 국에서 위로를 마셨다.
컨설팅을 마치고 나서는데,
원장님은 “저출산으로 운영상 위기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 남은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 것”이라며
의연하게 말씀하셨다.
그해 또 다른 계절,
이글이글 타오르던 여름의 시작이었다.
당일 도착이 어려워 근처 도시에서 숙박하고
새벽 시외버스를 타고
오지로 향했다.
등 뒤에 메고 있는 백 팩 아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땀으로 흠뻑 젖어 어린이집에 들어섰다.
역시나 따뜻하게 맞아주신 원장님.
"고생했어요, 이런 데까지 와줘서 참 고마워요."
말씀과 함께 과일, 우유, 과자…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몇 번이고 정중히 사양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원장님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회의와 면담 일정에 정신없이 몰입하다 보니
그 마음도 뒤로 밀렸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원장님은 “도움이 정말 컸어요,
과일 한쪽도 못 드시고 보내드려 정말 아쉽네요”라며 인사하셨고
나는 먼 길을 가야 하기에 화장실을 들러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원장님은 큰 길가로 내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신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 더운 숨을 고르다 잠이 들었다.
도시 터미널에 도착해 거울을 꺼내려
가방을 열었을 때...
검은 비닐봉지에 꼭꼭 싸인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우유 한 팩.
그 옆에 작은 쿠키 두 개.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몰래 넣어주셨구나.
사양하면 서운해하셨던 그 마음을,
그렇게 조용히 내 등에 얹어주셨구나.
컨설팅 내내 조용히 내 옆으로 계속 밀어주셨던 그 우유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우유 한 팩이
한여름의 무더위 속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해 겨울, 그해 여름.
두 분의 원장님은 모두
지역 특성상 저출산과 고령화로 원아 수가 줄고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정책이 문제다”,
“이런 컨설팅도 좋지만 우선 제도가…”
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시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겨울의 따뜻한 국에서,
그 여름의 부풀어 오른 우유 한 팩에서
진짜 리더의 얼굴을 보았다.
정책과 제도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도
‘나를 믿고 남은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가는 분들.
그분들이 바로
현장 속 ‘리더다움’이다.
이 글은,
내가 받은 작은 따뜻함에 대한
조금 늦은 감사의 인사이자,
현장에 묵묵히 남아 사회적 책무를 이어가고 계신
모든 원장님들께 드리는 존경의 마음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 안에서 따뜻하게 숨 쉬는 그날의 리더다움은,
내가 현장을 사랑하고
다시 길을 나설 힘을 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