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결혼하지 않는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

by 오로롱도로롱




결혼을 꺼리는 이유는 상당히 많다. 자유연애 사상과 개인주의, 후술 할 출산을 꺼리게 되는 현상, 경제적 문제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결혼이 줄어든 것이지 아직 결혼 자체가 줄어드는 건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당연한 일이다. 결혼을 설명했던 문화 인류학의 이론들, 말리노프스키처럼 집단의 결속력을 다진다거나, 집단 간 협력을 도모하는 것, 레비스트로스의 호혜성의 원칙 등이 오늘날 사회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을 더 이상 집단 간 이해관계와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개인 간 사랑과 신뢰로 생각하고 있다. 그나마 사회 구성원 재생산의 기능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딩크족’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많아짐으로써 이것조차 기능이 모호해지는 중이다.



이제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겠다. 결혼은 대부분 연애의 연장이다. 수년의 연애 끝에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남녀는 서로의 약지에 반지를 끼고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뭐든 비관적인 생각이 앞서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결코 양보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할 것이고, 상대가 미워질 수도 있다. 물론 부부의 마음으로 슬기롭게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선 이혼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결혼이 당연한 것만큼 이혼이 당연한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이혼은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를 낳는다. 자녀가 있다면 곱절은 더 골치 아픈 문제다. 재산의 분할, 가정법원에서의 즐거운 조정절차, 몇십 년 묶은 서러움을 서로 토하는 시간 등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즉, 결혼을 해도 일생을 한 사람과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반지를 서로의 약지에 끼우고 식장에 들어가는 것이 수갑을 서로의 손목에 채우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출산의 경우는 결혼보다도 훨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75로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대로 가면 50년 뒤 우리나라의 인구는 절반이 된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되어 있다.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가의 입장에서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입장은 차치하고 개인의 입장에서 출산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출산 후 여성의 건강상의 문제는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아이 한 명을 기르는 데에는 엄청난 돈이 든다. 부모가 된 이상, 이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그 이상, 손자 손녀의 용돈까지 생각한다면 내가 죽는 날까지 돈이 든다. 이러한 경제적 부담은 다시 말해, 내가 쓸 돈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고, 혼자 벌어 혼자 먹고살기도 갑갑하게 느껴지는 오늘날 젊은이에 입장에선 너무도 비합리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경제적 이유는 사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교육심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더욱 원초적인 이유인데, 바로 “도무지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유아는 6살 이전의 경험에 거의 일생동안 가지고 갈 성격이 결정된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유아의 재능과 어쩌면 노력까지도 유전이라는 의견도 있고, 아무튼 아이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기회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가 제공하는 경험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어느 정도 성장을 할 때까지), 부모를 고를 수도 없다.(삼신할머니가 없다는 전제) 즉, 아이는 자신의 성격, 능력, 외모 어느하나 결정할 수 없고 발달되는 것또한 부모가 어떻게 하냐에 전적으로 달렸다.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오늘날 죄악시 여겨지는 ‘주입식’ 교육을 하는 셈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수백 년 전에 한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들의 의견과 욕구는 반영하지 못한 폭력적인 교육을 행한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오은영 교수님의 프로그램을 보면 잘못된 부모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아이를 낳아도 내가 오은영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잘 키울 자신이 없어진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자신을 가장 소중히 하는 오늘날 젊은이가 자신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희생과 책임이 뻔히 보이는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더더욱이나 자신이 티브이에서나 보던 “나쁜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은 배가 된다. 아이를 키울 때 돈이 들지 않고, 국가에서 공인된 “잘”키우는 방법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이상적인 해답일 듯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보단 인구 절반을 대체할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국민의 절반이 오은영 박사가 되느냐 터미네이터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지금 우린 서있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 둘 다 문제라고 하긴 어렵다. 개인의 영역에선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큰 문제이긴 하다. 그렇기에 이것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너무도 절박하여, 자신을 희생해가며 사회의 존속을 위해줄 수 없다. 자신을 똑 닮은 천사 같은 아이를 안아보기 전까진, 우린 그것의 기쁨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함에 젊은이들은 삶을 걸지 않는다. 나의 의견은 여기까지다. 이렇게 결혼과 출산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구구절절이 설명했지만, 나 역시, 글을 읽는 당신 역시도 이를 통해 태어났으리라. 우리의 선택이 어떻든 우리를 길러낸 부모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은영, 프로이트가 지적해도, 분명 최선을 다하셨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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