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대하는 두 가지 방법

by 오로롱도로롱


최근 엠비티아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무척이나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것으로 자신과 타인을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사람의 성향을 4개로 쪼개고 그 4가지 속성을 다시 이분법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에 온전치 못한 것을 알고, 이를 재미 이상으로 판단하게 되면 "어우 저 엠비티아이충", "엠비티아이 과몰입자"이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생각한 것이기에 재미로 듣는다고 생각하고 한번 나의 생각을 공감해주길 바란다.


우리와 같은 젊은이들은 많은 불안에 휩싸이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시험이다. 시험을 준비한다면, 혹은 목전에 두고 있다면 더더욱 사람은 불안해진다. "과연 내가 붙을 수 있을까?" , "시험에 내가 아는 문제가 나올까?" , "떨어지면 이 공부를 또 해야 하는 건가?" 하는 끝없는 불안은 학습동기를 위축시키고, 정서적으로도 자신을 좀먹을 수밖에 없다. 그에 우리 몸은 어쩌면 당연하게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데, 이를 통해 저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방어기제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긍정적 방어기제'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방어기제'이다.


먼저 긍정적 방어기제는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끊임없이 자기 암시하는 방법으로 불안을 이겨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 잘될 거야~" , "시험이 공부한 데에서 출제될 거야."와 같은 식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종용되는 방법이기도 하고 불후의 베스트셀러 '시크릿'에서 말하는 간절하게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명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방법에는 또 굉장히 큰 장점이 있는데, 이것이 잘 훈련된다면 실제로 이것은 동기부여의 수단이 되기도 하며, 자신이 암시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불안을 이겨내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면서, 성공을 부르는 습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도 단점은 있다. 첫째로, 이것은 만약 결과가 실패로 이어졌을 때 그 후에 더 큰 상실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잘 훈련되지 않고 그저 낙관적인 기대만 하게 된다면 오히려 현재의 위기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태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불안의 방어기제'의 역할이 지속되는 시험 전을 전제로 하면 두 번째 단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 방어기제는 실패를 자주 가정하고 그 뒤의 대안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며, 이에 뒤따르는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두어 실패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시험을 망치면 그 과목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시험에도 응시한다" 여러 가지 대안을 병행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 방법은 개인에게 흔하게 종용되지는 않지만 조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나 공식적인 의사결정엔 자주 활용된다. 애초에 플랜 B를 마련하는 것은 불안의 제거뿐 아니라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일반적으로 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것에 장점은 실제로 실패라는 순간이 왔을 때 더욱 준비된 상황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과 긍정적 방어기제보다 쉽게 불안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개인차가 클지도 모른다.) 단점은 대안을 병행하거나 마련하는데 큰 힘을 쏟게 되면 결국 성공을 위한 노력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물론 이 두 가지 방어기제 중 하나를 골라 일관적으로 적용한 다기보단 종합적으로 쓰거나 매 순간 다르게 적용할 것이다. 하지만 엠비티아이처럼 긍정적 방어기제를 선호하는 사람과 부정적 방어기제를 선호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이 둘 다 장단이 명확하다. 하지만 사회가 종용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쪽이고 나는 부정적인 기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고초를 겪는 일이 꽤 있다. 왜냐하면 우린 보통 타인의 불안을 위로하고자 할 때 사회적으로 종용된 긍정적 기제를 쓰기 때문이다. 넌 잘될 거야. 넌 앞으로도 잘 해왔으니깐 괜찮을 거야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갖 실패했을 때만을 가정하고 있으니 어쩐지 조금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누군가 불안해할 때 나 역시 해주고 싶은 말은 실패를 해도 좌절하지 말고, 실패했을때 시도해봄직한 대안을 말해주는 거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좋지 않아 보여 영혼이 부족한 응원을 보내곤 한다.


솔직히 글을 처음 쓸 때 내가 부정적 방어기제를 쓰는 사람이고 니체는 나를 보고 겁쟁이의 철학을 한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라는 결론을 정해두고 썼지만 쓰다 보니 양측을 모두 옹호하는 글이 되었다. 사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불안해하는 사람이라면 부정이든 긍정이든 불안만 해소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쓰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그저 용기 있게 긍정적인 방어기제만으로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긴 하지만 세상엔 용사보단 겁쟁이가 더 많을테니 긍정이든 부정이든 힘내서 살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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