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기를 할 때 파란색 볼펜을 쓴다. 가장 눈에 잘 띄고,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흰 종이를 파란 펜으로 누비다 세상의 수많은 파랑에 대해 생각했다.
파란 펜을 잡고 있는 하얀 내 손목에도 파란색 정맥이 흐르고, 고개를 조금 들어 창을 보면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로, 빌딩들의 틈 사이로 아주 작게나마 파란 한강이 흐르고 있다. 저 파란 한강은 가장 높은 산에서부터 파란색 물이 되어 여기까지 흐르다가, 사방을 둘러봐도 파랑밖에 보이지 않는 태평양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파란 것들은 손에 닿으면 색을 잃는다. 강과 바다의 물은 사실 투명하고, 하늘은 사실 검고, 정맥은 사실 붉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파랑과 내 몸을 흐르는 파랑은 사실 정말 파랑이 아닌 것이다. 어딘가에서 예전엔 물감을 만들 때 파란색 염료가 가장 구하기가 어려워, 파란 물감은 잘 쓰지 못했다는 글을 본 것도 같다.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손에 닿으면 사라지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미지의 색. 파랑이다.
이런 기묘한 특성 때문일까. 파랑, 'BLUE'는 우울이라는 뜻도 있다. 수많은 우울들은 인간을 파란 곳으로 데려간다. 누구는 하늘로 데려가고, 누구는 차가운 강물로, 바다로 또 누구는 자기 몸속에 있는 파랑을 내뿜으며 손목을 긋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버린 인간은 파란 얼굴로 굳는다. 우리들의 파랑이 아름다운 색에서, 무서운 색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파랑에 빠지면 안 된다. 그것들은 우리를 파랑으로 데려가니깐. 파랑에 빠지면 안 된다. 그것들은 우리를 파랑으로 데려가니깐. 파랑에 빠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