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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Jan 17. 2023

구원타자 “비틀즈”


 나약한 인간은 강한 신을 만들고, 강한 신이 나약한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신처럼 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신에게 용서받기 위해, 어떤 이들은 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무신론자인 나는 이렇게 저마다의 구원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해 해가는 과정이 재밌기 때문에 종교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결함을 인정한다. 보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나약하고, 욕심 많고, 악하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 애초에 우리는 죽음이라는 끝을 정해두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곧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죽음뿐 아니라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우울감도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촌이 땅을 살 때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복통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느끼는 우울감 같은 것은 막을 수 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을 찾는다. 욕심을 버릴 수 있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갔길,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말이다. 이는 종교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상관없이 찾는 구원이다. 다만 그 구원에 대한 애절함이 목적하는 장소가 신이냐, 혹은 그저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이냐가 차이가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나는 시험 전날이 되면 하늘에 뜬 달에게 기도했다. 나의 노력이 부디 헛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주로 했던 것 같다. 효과가 있었는진 모르지만 당연히 살아있지도 않고, 지구 주위나 빙빙 도는 고체덩어리 달이 내 기도를 들을 리가 없다. 내 기도는 중력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기에 결코 달에 닿지도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 또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앞에 내용은 사실 그냥 손 가는 대로 쓴 것이고, 지금의 이야기가 주제인 미괄식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노래를 듣다가 비틀즈의 '렛잇비'가 나왔다.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였다. 평소에는 그냥 렛잇비로 들리던 가사가 그날은 유독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지도 모르는 '마더메리 씨'가 말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라는 지혜가 몇십 년을 초월하고 경도 135도를 넘어서 나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그것이 나의 구원이었다. 나의 우울을 삼키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구원. 무신론자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이라 결국 어딘가 기대게 되는데, 나는 뜬금없이 어느 날 비틀즈에게 기대어버린 것이다.(마더메리 씨의 가르침에) 거의 중반 기타 솔로에선 눈물까지 나올 지경이었지만, 뭐 아쉽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환영처럼 두 번째 렛잇비를 들었을 때는 다시 올드팝으로 돌아왔다. 이런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음악에게 위로받는 건 아주 자주 있는 경험이지만, 어쩐지 더 힘든 사람이 많은 요즘엔 더욱 위로가 절실하다. 또한 안타깝게도 멜론 탑 100에 있는 노래들은 위로를 주기엔 조금 신나고, 아름다운 아티스트를 부각하는 노래가 많은 것 같아 비틀즈를 한 번쯤 떠올려주십사~ 하는 마음도 담았다.


 끝으로 몇 가지 추천하자면 조용필의 꿈, 바람의 노래 / 비틀즈의 let it be / 빌리조엘의 piano man / 캣 스티븐스의 Father & Son / 강산에의 사랑하는 것들 정도가 한 번씩 내 삶에서 구원이 되어주었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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