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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Jan 31. 2023

강릉 여행기

  

 나처럼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충동을 원동력으로 살아간다. 시험이 끝나면 여행을 가야지 가야지 했었는데, 정작 시간이 생기니 귀찮고, 고민하기가 싫어져 방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새벽, 일순간 충동이 생겼고, 당장 강릉으로 가는 기차와 잠자리를 예약하고, 다음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강릉은 몇 번 가본 도시이다. 늘 혼자 갔지만, 여행은 혼자 가는 게 편하다. 누구를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즉흥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는 것도 충동적으로 정하는데 어떻게 남과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서울역엔 사람이 잔뜩 있었는데, 모두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연인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온사람, 부부, 내가 기차에서 자리를 바꿔 드렸던 할아버지 두 분도 계셨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이와이 슌지 ost모음"을 유튜브로 들었는데, 영화 ost를 들으면 그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두배로 즐거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노래가 좋은 영화가 취향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노래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리니 강릉역에 도착했다.     


https://youtu.be/jEx2M9vEwDM


 강릉은 신기하게 신호등이 별로 없다. 적당히 알아서 차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면 된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엔 잘 건널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유로운 도시라 운전자들도 여유롭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것 같다. 내 코스는 늘 시장까지 걸어가서 횟감을 사고 택시를 타고 바다로 가는 것이다. 바다에 왔으니 회를 사랑하는 나는 시장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지하에 수산물 시장이 있는데, 지상에는 닭강정과 튀김을 파는 집들이 즐비하다. 유독 몇몇 가게엔 줄이 길게 늘어서있는데,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나, 특별히 홍보가 잘된 것 같다. 지하엔 비슷한 수조와 비슷한 메뉴구성을 가진 비슷한 횟집이 있다. 혼자온 나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광어 우럭이 섞인 작은 세트와 개불이 어쩐지 먹고 싶어 개불도 네 마리 구매했다.

     

 일사천리로 택시를 타고 해변으로 갔는데, 기사님이 글쎄 앞 차의 운전자가 여잔지 지나가면서 봐달라고 하셨다. 아는 친구분이겠거니 했는데, 자신과 예전에 연인으로 지냈던 사람이라고 하셨다(?) 사실일지는 모르나 뜬금없이 15분 동안 기사님의 삶과 사랑이야기를 들으니 멀미보다도 더 큰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래도 뭐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하며 강문해변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파도가 쉼 없이 쳤다. 안경을 안 써서 끝없는 파랑과 중간중간 흰 파도가 보였는데, 하늘에 구름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 같았다. 하늘은 잔잔한데 바다는 쉼 없이 구물거린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첫 번째 파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을 하다가, 커다란 운석이 만든 태초의 파문이 쉼 없이 해변에 부딪히고 다시 돌아가며 유지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또 바다는 한시도 쉬지 않고 파도를 만들어야 해서 나는 바다 같은 피곤한 삶보다는 호수 같은 고요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다를 보며 회를 먹고 싶었는데, 날이 너무 추워 편의점 앞에 탁자에서 회를 먹었다. 매화수도 한병 사서 먹었는데, 추운 곳이라 그런지 회가 계속 탱탱해서 좋았다. 바닷가에서 파는 회가 맛있는 건지 아니면 어떤 정서적 충만함이 회맛을 돋우는 것인지는 모르나,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후로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같은 방 형님들과 친해져 차를 얻어 타고, 점심을 얻어먹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잔씩 사드리고 이야기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사실 낯섦을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인데, 처음 보는 사람만큼 이에 적합한 것이 없다. 게다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가장 나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분들이 많아 더욱 즐겁다. 바다야 어디든 비슷하지만 사람은 어디나 다르니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면 내가 얼마나 좁게 살고 있는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은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때의 냉소가 또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돌아오는 기차에선 왜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까 생각을 했다. 솔직히 가슴이 뚫린다거나, 그런 것은 문학적인 표현인 것 같고 좀 더 근원적으로 찾아보니 우리가 모두 바다에서 왔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우린 흙으로 빚어진 것이니 흙에서 온 거 아닌가 하겠지만, 나는 바다에서 생명이 창조되고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부류라 결국 처음은 바다이다. 아마 우리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까지 올라가면 결국 고래나 물고기, 플랑크톤이 나올 테니 우리의 몸속 깊숙이 바다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예술로 이런 무의식이 증폭되어 아름다운 바다, 석양이 지는 바다 등등을 보면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진화가 된 것이다. 낭만은 없지만 연어마냥 매년 바다로 기어 올라가는(ktx 타고) 나를 설명하기엔 적합한 설명이다.    

 

 다시 도착한 서울역은 여전히 사람이 많고, 낭만이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생각 없이 1호선을 갈아타고 9호선을 갈아타니, 어느덧 집. 불과 몇 시간 거리에 바다가 있던 것이 꿈같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여행을 잘 다녀온 것이다.      


초록불곷 소년단 - 한겨울 밤의 꿈

https://youtu.be/GgLs2Sav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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