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것의 목적에 대해 선술하겠다.
나는 세상에 정의인양 여겨지는 것들에 모종의 의심을 갖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결코 부정되어서는 안될 것 같은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또한 쉽게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하였다. 모든 사상들은 모두 인간의 발명품이고, 만고불변으로 정의로운것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말이다.
그래서 하나 꼽은 것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 라는 믿음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납득 시킬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정의롭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상들도 결국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혹은 어렴풋이나마 감각하도록)
사람은 왜 죽이면 안되는가?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인간은 존엄한가? 이것에 대한 답은 그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라는 의미 없는 순환논리만 가져온다. "천부인권" 이라는 멋진말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나마 합리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사회계약"이다. 우리는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러한 계약을 맺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홉스가 말하길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힘이 약한사람도 꾀를 통해 힘이 강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힘이 강한 사람도 상호불가침 계약을 맺는 것이 이득이 된다.
그렇다.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이유도 별것 없다. 그저 내가 죽기 싫어서 서로를 죽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는 아주 자명한 믿음만 있으면, 인간은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이는 수세기 우리와 함께한 전쟁, 노예제도, 대량학살 등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상상을 해보자. 만약 사람들의 힘이 너무 크게 차이가 난다면 어떨까. 지구에 단 100명의 사람만 존재하고 모두 "전투력"같이 힘의 크기가 정량화 되어있다고 생각해보자. 또한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경제학의 가정을 차용하기로 하자. 사회계약은 2등부터 100등에게는 도움이 된다.(죽을 위험이 있기에) 하지만 1등에겐 필요가 없다. 오히려 1등은 힘을 무기로 하는 것이 개인에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1등은 사회계약에서 이탈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2등이 1등이되고, 나머지 98명의 사람들은 계약을 맺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역진귀납'으로 이어지고 1등이 된 2등은 계약에서 이탈하며, 이것은 총 99번의 이탈로 이어진다. 결국 계약엔 아무도 남지 않고 사회계약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계약을 유지시키려면 '선한 1등'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1등이 역진귀납을 일으키지 않고, 본인에게는 이익이 없지만 계약에 남아주어야 한다. 아주 선하면서도 아주 강한. 2등부터 100등이 모두 덤벼도 무너뜨리지 못한 절대자가 상호불가침 계약 속에 남아주어야 사회계약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절대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찾았다. 이 자가 실제로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아주 강한 절대자가, 계약을 유지하고 계약을 어길 시 처벌한다. 즉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하는 등 계약을 어기면 신벌(처벌)을 통해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이유또한 고작 "신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지금은 신의 개념이 '공권력'으로 치환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권력보다도 더 강한 것이 등장해버리면 어떨까? 영화에나 등장하는 슈퍼맨이 등장한 것이다. 슈퍼맨은 너무도 강력해, 우리나라 군대가 총동원 되어도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슈퍼맨에게 사람을 죽이지말라든지, 폭행하지 말라든지, 강간하지말라든지 하는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까? 법과 도덕 따위를 말이다. 그저 슈퍼맨이 "난 당신들과 사회계약을 맺지 않았다."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슈퍼맨에게 손가락질 하고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허공을 가르는 말이 되어버린다.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것도 모두 우리끼리의 약속이다. 절대적 강자가 나타나면 이런 약속도 무용지물이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약자들의 약속은 강자에겐 공허한 외침이다. 혹자는 슈퍼맨같은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으니, 이 역시 필요없는 논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엔 거의 슈퍼맨으로 치환될 수도 있는 것들이 있다. 독재국가의 독재자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의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죽인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도덕으론 악한 행위다. 하지만 김정은이 "나는 당신들과 사회계약 맺지 않았다.", "북한은 고립된 국가다"라고 해버리면 우리들의 외침도 공허해진다. 만약 미국이 너무도 강해져 나머지 모든 나라로 부터 고립되어도 괜찮아진다면, 그들이 엄청나게 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인들만의 도덕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도덕을 가지고,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를 비난하겠지만, 그들이 우리와 사회계약을 맺지 않는다고 해버리고, 미국만의 계약(어쩌면 법)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규정해버린다면 우리의 비난도 약자의 외침일 뿐이다.
즉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 것은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숭고한 이유따위는 없다. 세상에 대부분의 법, 도덕들 역시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바쳐서 지켜냈던 사상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어떤 합리적인 쓰임에 의해 설계된 것일뿐 영원불변의 정의따위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영원한 정의는 없다고 가정하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는 허무주의를 조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시 하고, 정의롭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언제나 모든 것들이 "지금으로써의 최선"임을 명심하게 하기 위함이다. 무언가를 정의라고 여기는 것은 동시에 그것과 다른 것을 부정의라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를 만드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믿음도 쉽게 무너지는 세상에, 영원한 정의가 어딨겠는가.